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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330257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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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조련한 지 얼마나 됐어?” / “이, 일 년 됐는데.” / “이 년이야? 일 년이야?” / 조련사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 “일 년인데!” / “일 년 전부터 코끼리 조련에 침투시켰다.” / 형사가 타이핑을 한 후, 코를 노트북에 바짝 대고 킁킁댔다. / “냄새가 제법 구리다. 왜 코끼리 조련을 시작했지?” / “순하고…….” / “묻는 말에만 대답해! 왜 코끼리 조련을 시작했냐고?” / 형사의 목소리가 몇 옥타브를 넘나들었다. 조련사는 의사가 ‘왜’라고 물을 때와 다르게 질문을 지겨워할 새가 없었다. / “코끼리는 내 말을 잘 듣는데.” / “데, 데, 데, 데, 데?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하냐?” / 조련사는 마음뿐 아니라 몸도 졸아들었다. 몸이 저절로 번데기처럼 말렸다. / “요! 요! 인마! 왜 코끼리가 달렸다고?” / “달린 게 아니라 뛰어간 건데.” / 형사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조련사가 재빨리 덧붙였다. / “요!”
“그날은 얘가 비번이었어요. (……) 공놀이 훈련을 시킬까 싶어 우리에 들어갔는데, 코끼리 뒤에 누군가 있는 거예요.” / 동료의 진술에 형사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 “이 사람이었나요?”/ “예. 바지를 내리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소변을 보는 줄 알았는데…….” / “그런데요?” / “근데 얘가 코끼리 거시기를 잡고 있더라고요. 다른 한 손은 자기 바지 속에 있었어요. 어찌나 손을 마구 흔들던지. 전 너무 놀라서 못 본 척하고 몰래 나왔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련사가 동료에게 달려들었다. 의사가 어렵게 조련사를 동료로부터 떼어 놓았다. / “아, 아닌데!” / 조련사는 분노와 답답함이 얼룩진 표정으로 강력하게 부정했다. / “거짓말! 거짓말인데.” / “변태성욕입니다. 변태성욕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성애의 대상에 대한 도착과 성행위에 이상이 나타나는 걸 말하죠. 성애의 대상으로 동물애(動物愛)로의 도착이 있을 수 있죠.” / 의사는 확신에 찬 투로 설명을 했다. 형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콧방귀를 뀌었다. / “그냥 종합 장애 세트라고 하세요.” / 조련사가 형사의 말을 비집고 혼잣말을 했다.
“거, 거기를 모, 모기한테 물렸었는데. 가려웠는데. 긁기도 힘들고. 주변만 긁다가 약 바르려고 코끼리 뒤에서 팬티를 벗었는데. 화끈거렸는데. 중심 잡으려고 코끼리 거시기를 잡고 있었던 건데.” / “이분은 단지 애정에 대한 색다른 환상이 있어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동물에게로 향하는 것뿐이죠.” (……) “형사님, 이분은 좀 다른 것뿐이에요. 다를 수 있어요. 그건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유전과 환경 때문이죠. 선생님도 피해자입니다.” (……) 형사가 핀잔을 주듯 가볍게 이야기를 받았다. / “골고루들 하시네. 이솝우화에, 성인물 에로틱 버전에.” / “증명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와 성정체성의 관계, 제 논문입니다. 트라우마가 무슨 뜻인지 아시죠?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정신적 충격이 깊은 상처로 남는 걸 말합니다. 이 논문은 세 가지 사례를 토대로 썼는데, 선생님은 두 번째 사례와 흡사한 지점이 많…….” / 의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 “사주를 받은 거야!” /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듯 형사는 의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누구한테서 받았느냐만 밝히면 되는데, 계속 끼어드네. 정신 산만하게. 금치산자니 정신병자니 해서 빼낼 생각 마쇼. 그런 꿈은 아예 꾸지 않는 게 좋아! 피차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