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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56346272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5-04-15
책 소개
목차
발간사 월봉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며 6
유학의 봄
유학의 봄 13
인연의 고리 26
국학의 창립과 반란 37
귀화와 변관 43
그 스승의 그 제자 48
우정에 꽃이 피면 51
실사구시의 길 55
배움은 파도를 넘어 59
장안의 이두 담론 62
국학의 얼개 75
유자(儒者)의 길 77
각필 구결을 배우다 83
표준 이두의 얼굴 87
훈민정음의 주춧돌 91
우리 말을 한자로 적다 97
구결에서 가나(仮名)로 101
이두와 향찰의 길목 114
처형과 용서-(AI 악극) 132
화판(花判)의 무지개 140
효행과 유학 159
어머니와 조상 숭배 176
삼국유사의 효선 185
선사의 효행 199
세조와 석보상절 206
월봉 후예의 효행 208
믿음의 언저리 222
전통 교육의 부활 241
참고문헌 252
월봉선생실기
월봉선생실기(영) 257
월봉선생실기(서) 316
영종교서 322
사적 서술 327
행장 332
영조대왕 수교문
英祖大王受敎文 341
시조공 묘역 전도 355
시조공과 화령군 묘역의 지형도 356
후기 359
저자소개
책속에서
경험만 한 스승이 없다. 유학으로 새판을 짜려는 신문왕 초기였다. 한림학사 총지는 조정에 제청하여 그의 스승이었던 승문원 태학사 방천경과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 교육의 산실인 국자감을 견학하기로 했다. 중국의 국자감과 인재 양성의 틀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월봉은 고구려 출신의 이 학사와 더불어 당나라에 사절단으로 임명되었다. 임금에게 인사차 입궐하였다.
“전하, 당나라에 다녀오겠습니다. 저의 스승이신 월봉 방지(方 智) 태학사님을 특사로 모시고 이 학사를 부사로 하여 사행을 꾸렸습니다. 특히 월봉 선생님의 도움이 클 것으로 봅니다. 걱정 안 하시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소신이 없는 동안에 강녕하소서.”
“이번 사행에 대한 신라 사람들의 기대가 크오. 잘 돌아보고 우리가 무엇을 참고할 수 있을지 보고 배워 오면 좋겠소. 무엇보다도 낯선 바다와 대륙으로 가는 여정이니 건강에 특별히 유념하시오. 이번에 월봉 특사께서 가시니 참으로 안심이 되오. 잘 돌아보고 와서 뜻을 모아 새로운 교육 제도와 인재 등용으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밑그림을 그려 보았으면 하오. 이 학사도 부디 몸 성히 잘들 다녀오기를 바라오. 틈이 날 때 목이 마르면 함께 다려서 들라고 차 몇 봉지 마련해서 두었으니 내가 다려 주는 것으로 알아주면 좋겠소.”
“성은이 망극합니다. 모쪼록 무양하소서. 전하.”
오고 가는 화기애애한 군신 간의 대화였다. 총지가 이끄는 사행단은 거친 서해를 건너 산동의 위해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머리도 식힐 겸 월봉과 총지는 갑판으로 나와 시원하게 트인 바다를 보며 어떡하면 꽉 막힌 신라 사회를 환하게 시원스레 뚫을 방안이 없을까에 대하여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사행길에 특사 월봉 선생은 중국의 한림학사로서 문무왕 9년(669)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아예 신라인으로 귀화를 한 사람이다. 남다른 감회가 서린다. 태 묻은 고향인 산둥에도 들를 겸 새로이 국자감의 교육과 인재 등용에 대한 현장을 살펴보고자 하여 제자인 설총과 함께 신라의 사절로 동행했다. 어찌 보면 설총을 안내하는 총지휘 감독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말이 특사지 사실상 총감독이나 다를 바 없었다.
초가을 바닷바람이 다소 선선하여 바람을 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총지가 월봉 스승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람들은 흔히 방지는 화천, 설총을 화산이란 별호로 불렀다.
“스승님, 이번 중국 방문에서 어떤 점을 살피면 좋겠습니까?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화산의 도우미로 온 것 아닌가요?”
“무슨 그런 말씀을요. 가능하면 국자감의 운영 실태와 중국의 인재 양성 제도에 관한 정보를 얻어볼까 합니다. 특히 국자감 교육과정에서 반절을 어떻게 가르치며 어려움이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습니다. 신라에서는 제가 관여하여 한자의 훈과 소리를 활용하여 원문은 그냥 두고 문장 사이나 어절 사이에 들어갈 접속 부분의 토를 읽고 적는 방안을 만들었습니다. 저네들의 의견도 듣고 하여 통일된 문자의 표기 방식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함께 따라왔던 고구려 출신의 이 학사가 문득 생각을 꺼냈다.
그는 할아버지가 고구려의 신집 5권을 내놓은 이문진 태학사였다. 고구려 유민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국학으로 영입을 한 인물이었다. 입이 날카로웠다.
“방법론으로는 당나라의 것을 본으로 삼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원효의 각필 구결 같은 소리를 적는 표기가 오히려 더 낫지 않습니까? 원효는 민족 자주의 깃발 아래 평생을 살아오심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머리를 끄덕이던 총지가 이 학사의 이야기를 듣더니 낮은 목소리로 설득하려는 듯 말문을 연다.
_본문 ‘장안의 이두 담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