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56411161
· 쪽수 : 576쪽
· 출판일 : 2018-09-04
책 소개
목차
14. 성글게 녹아 (2)
15. 성글게 녹아 (3)
16. 굽이치는 밤 (1)
17. 굽이치는 밤 (2)
18. 닿아서, 덮여서 (1)
19. 닿아서, 덮여서 (2)
20. 닿아서, 덮여서 (3)
외전 - 영화, 뭐 별건가요
저자소개
책속에서
버들의 시선이 황 대표의 단단한 등에 닿았다. 입술이 작게 틈을 냈다. 마치 한숨처럼. 절대 들리지 않을 크기로 버들이 황 대표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딱 세 글자가 제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특별한 의미가 됐다. 첫사랑이다. 그러면서 짝사랑이다. 마음이 어떤 봄처럼 살랑거리다가 혹독하게 덜그럭거리기도 한다.
잠자코 기다려 봤지만 역시나.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가장 익숙한 황 대표의 모습이란 바로 저 뒷모습이었다. 이대로 자신이 영영 사라져 버려도 황 대표는 알지 못할 거다. 애초에 저 사람 성격으로는 자신 같은 건 신경 쓸 범주에 포함되지도 않을 테지만. 그건 좀 다행이다. 버들의 입가가 나긋하게 풀렸다.
읍내의 유일한, 응급실이 딸려 있는 조그마한 병원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서늘한 복도를 따라 케케묵은 시멘트 냄새와 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미 머리카락과 옷에 스몄을지도 모르겠다. 별로다. 서둘러 바깥으로 나온 버들이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적응할 틈 없이 쏟아진 햇빛이 강렬했다.
병원 주변은 시장이었다. 읍내답게 번화가 느낌이 난다. 큼지막한 버들의 눈동자에 순간 호기심이 반짝거리면서 담겼다. 고만고만하게 낮은 건물들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앞다퉈 분주했다. 황 대표의 차 가까이 세워진 가게에서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여러 개의 찜통에서 갓 쪄진 왕만두가 꺼내졌다. 윤기가 반질반질하다. 생소하게 허기를 느낀 제 아랫배를 버들이 무심코 만져 봤다. 홀쭉하다.
황 대표가 다가오면서 그림자가 졌다. 커다란 손이 버들의 이마를 덮었다. 떨린다.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두근두근, 심장이 난동을 부려 댔다. 황 대표의 사사로운 접촉에 버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타. 차에.”
저 때문에 밤새웠을 황 대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은 어디 가세요?”
눈치 보며 물었다. 대답 없이 황 대표가 뒤돌았다. 손에 들린 종이가 제 처방전이란 걸 버들이 알아차렸다. 황 대표가 병원 일 층의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도 병원처럼 오래된 모양이었다. 다 허물어지게 생겼다. 따라갈까 했던 버들이 어쩐 일인지 곱게 황 대표의 말을 들었다.
꼭 멀미하는 것처럼 머리가 빙글빙글 울린다. 눈을 떴을 때 여러 모로 놀랐다. 여기가 병원이란 것도, 제 곁에 황 대표가 앉아 있단 것도. 그러면서 다 망쳤단 생각이 앞섰다. 허망해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아 내느라 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