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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624233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0-01-30
책 소개
목차
1부
출조│수몰│신촌블루스│밤│바늘│낮│짝밥│꿈│소야
2부
싱크홀│이별│붙여넣기│봉헌│서울, 한붓그리기│퍼포먼스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인석 봐라. 밤새 왔겠네?”
사람의 말이 부드럽고 반갑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저씨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아저씨가 나와 저수지 너머 언덕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먹을 걸 좀 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했다.
“그래, 근데 우선 어디 좀 보자.”
아저씨가 수건으로 얼굴과 목, 손을 닦아주고 담요로 어깨를 감싸주었다. 아저씨가 버너 위에 물을 올려놓고 난로를 가져오겠다며 집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저수지 너머 산등성이를 한참 바라다보았다. 거기, 어머니 무덤이 있었다. 무덤은 여기 있는데 어머니의 혼은 왜 집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며 집에서부터 이곳까지 몰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 동안 더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이 동이 텄다. 아직 세상은 온통 흑백이었다.
찌가 올라오다가 순간적으로 멈추는데 이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말하자면 그 순간이 먹이가 입천장에 닿기 직전 혹은 막 닿았을 때이고 그때 걸어야 한다. 그걸 정확하게 읽고 행동해야 월척을 낚을 수 있다. 꾼은 그러니까 그 상황을 동영상으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녀석들도 지구상에서 오래전부터 온갖 수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걸 빨아들였다가는 누군가에게 낚인다는 것을 녀석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삼키는 게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걸려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뇌물을 삼키지 않는가.
한여름인데도 봄이나 가을같이 선선했다. 어둠이 짙었다. 산 그림자가 진 곳은 특히 그랬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 모든 게 그 안에 고여 있는 듯했다. 어둠이 짙은 곳과 조금 덜한 곳 사이에 그림자 경계가 띠를 이루었다. 그 경계, 검푸른 물 위에 두 개의 야광찌가 개똥벌레처럼 앉아 있었다. 소리도 수면 중이었다. 세상은 하늘과 산, 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세상이 잠시 출렁, 홀연히 빛나던 연두색 케미가 물과 수초를 연초록으로 물들였다. 찌가 중력과 부력 사이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가라앉아 제자리를 잡았다. 나는 낚싯대에서 손을 뗐다. 긴장을 풀고 있으려니, 무연히 앉아 있기에 오히려 좋았다. 새벽이 더디게 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