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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44088
· 쪽수 : 616쪽
· 출판일 : 2025-06-18
책 소개
복수적이고 끝없이 귀환하는 생명의 사건이다.”
죽음으로 생(生)을 사는 다인칭(多人稱) 몸의 목소리
‘혀 없는 모국어’ 사이에서 펼쳐지는 단 한 편의 시
세계인이 함께 읽는 이 시대 가장 뜨겁고 급진적인 언어, 김혜순
‘시하고’(I Do Poetry) ‘새하며’(I Do Bird) 시의 영토를 구축해온
김혜순 시학(詩學)의 정점, 죽음 3부작을 한 권으로 읽다
“나는 이 시들을 쓰며 매일 죽고 죽었다.
하지만 다시 하루하루 일어나게 만든 것도
이미지와 리듬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죽음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역설.
시는 죽음에의 선험적 기록이니 그러했으리라.
당신이 내일 내게 온다고 하면, 오늘 나는 죽음에서 일어나리.”
―「시인의 말」(『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2025)에서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 2022년 영국 왕립문학협회(RSL) 국제작가 선정,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 수상, 2025년 미국 예술·과학아카데(AAAS) 회원으로 선출. 모두 시인 김혜순이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쓰고 걸어온 역사다.
지배적 언어에 맞서는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갱신하며, 그 이름이 하나의 ‘시학’이 된 ‘시인들의 시인’, 김혜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1979년 이래 4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인은 늘 “제도화된 역사들과 가장 먼저 작별하는 시적 신체의 최전선”(이광호)에 서 있었다. 하여 김혜순의 시집은 단순히 한 시인의 저작을 넘어 각 시기 한국 현대시의 가장 첨예한 지점을 누구보다 앞서 이어낸 별자리, 시적 실험의 아카이브와 같다. 김혜순에게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뜨고 지면서 커지고 줄어드는 달처럼 죽고 사는 사진의 정체성을” 보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여성의 몸은 무한대의 프랙털 도형”이라 했던 시인은 자신의 시가 “프랙털 도형처럼 세상 속에 몸담고 세상을 읽는 방법을 가지길 바란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문학동네, 2002)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성의 존재 방식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으며, 시 속에서 전개되는 시간과 에너지, 긴장과 현기증 자체인 리듬, 그 리듬 안에 시의 미학과 윤리학을 작동시키는 방법론으로 독보적인 시적 성취를 이루어왔다. 또한 ‘여성이 몸에 실재하는 감정과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다정함과 격분이 공존하는 목소리로 악몽과 어둠을 관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적 황홀’(스웨덴 시카다상 선정의 말)을 열어젖히며 굵고 또렷한 국제적 존재감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연대와 죽음에의 선험적 직관 사이를 오가며 생체험을 넘어선 미학적 시론을 구축해왔다. 사회적 참상, 전쟁의 트라우마 같은 집단적 슬픔과 개인의 죽음, 그 둘 사이의 연관을 구조적으로 직조해낸 ‘죽음 3부작’을 통해 여지껏 누구도 디디지 못한 언어의 신개지(新開地), 시의 영토를 오늘도 넓혀가고 있다. 시인의 연보가 말해주듯, 1979년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중단된 적 없는 김혜순의 시의 시작(始作)은 그래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다만 경이로울 뿐이다.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문학과지성사, 2025)는 바로 이 죽음 3부작, 『죽음의 자서전』(2016), 『날개 환상통』(2019),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를 한 권으로 묶은 시집이다. 올해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 선공개되어 독자들은 물론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책에는 죽음 3부작 시집들 시 전편을 비롯해, 미발표 산문 「죽음의 엄마」와 2022년 4월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소개되어 화제를 모은 시 「고잉 고잉 곤(Going Going Gone)」(『날개 환상통』 수록)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총 5개 언어로 번역해 함께 실었다.
세 권 시집을 한 권으로 묶다 보니 전체 600쪽을 훌쩍 넘겼다. 시행이 길다 싶으면 위트 넘치는 시어와 시인 특유의 리듬이 갈마들고, 구술과 구송을 오가는 듯한 함축적인 시 또한 편편이라 바라건대 시마다 독자가 누리는 ‘펼친 면의 시간’이 충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철제본을, 그리고 합본 형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책등을 비운 노출 제본 형식을 택했다. “부모들은 저의 과거였다가 죽어서 저의 미래가 되었”다고, 그렇게 일상과 애도의 시퀀스가 반복되는 “죽음은 복수적이고 끝없이 귀환하는 생명의 사건”이라 명명한 시인의 말에 착안하여, 표지는 강렬한 핏빛 붉은 색지를, 내지는 각 권마다 흰 종이에 검은 먹 글자로 새기는 애도의 시와 다시 태우고 난 그을음 가득한 잿빛 종이를 한 장 한 장 엮는 마음으로 본문 용지를 달리했다. 앞표지에는 제의적 의미를 띠는 현대 미술가 ‘이피’의 드로잉을 먹 박인쇄로, 뒤표지에는 책의 제목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를 중국어, 일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5개 언어로 옮겨 나란히 앉혔다.
표지와 본문에 드로잉 6점으로 함께한 현대 미술가 ‘이피’는 강화플라스틱부터 불화의 금분까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병행하며, 여성의 몸에 기생하는 수많은 몸들(멸종한 몸, 미래의 몸, 감각으로 형상화된 타자의 몸)을 위한 제단을 구축해왔다. 2025년 한국인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재단(Foundation for Contemporary Arts)이 제정한 도로시아 태닝상(Dorothea Tanning Award)을 수상했다.
“시인은 죽어가는 모든 존재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시를 쓰는 건 요리와도 같지요. 요리가 저의 바깥에 있는 생물을 죽여서 조리하는 것이듯, 시도 살아 있는 것을 가져다 언어의 세계로 투척하는 것입니다. [……] 죽음은 개별적이고 각자적인 경험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수동적 죽음을 반복하면서 죽임에 저항하는 존재인 시인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을 죽여 여럿, 즉 복수가 된 존재의 글쓰기이기에 ‘나’를 벗어나 타자와 소외된 존재와도 소통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죽음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시의 정치학일 테지요.”
―김혜순(2024 광주 비엔날레 독일관 김혜순 ×박술 대담에서)
“딸이 자신의 엄마의 죽음을 쓴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무엇이 ‘아니’인가. 엄마의 삶이 삶이 아니고, 엄마의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고, 딸이 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의 삶에서 삶이 아니었던 것, 죽음을 끌어내고, 엄마의 죽음에서 죽음이 아니었던 것, 삶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이제 엄마는 죽어버려서, 내 안의 엄마의 삶과 죽음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엄마의 삶과 죽음은 얼룩처럼 서로 스며들어 번져버렸다. 그리하여 엄마는 이제 삶 이전과 이후, 죽음 이전과 이후에 두루 편재해서 시를 쓰는 여자(딸)의 딸이 되어버리고 하고, 엄마의 엄마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시 쓰는 여자 자신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
여자는 태어나면서 이미 벌써 죽음에 들려(possessed) 있다. 마치 시인의 운명처럼. 죽음이 선험적이다. 삶과 죽음을 풀어나가는 나의 시적 전략이 있다면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이와 같은 시선이다. [……]
딸과 함께 엉긴 삶, 딸과 함께 번진 삶, 딸과 함께 편재한 삶, 그리하여 엄마는 사막처럼 부재하나 존재하게 되었다. 모래처럼 삶/죽음의 ‘/’에 처한 존재들처럼. 두 입술이 겹쳐지게 되었다. 엄마는 엄마가 ‘아니’게 되었다. 죽음이 ‘아니’게 되었다.”
―산문 「죽음의 엄마」에서
죽음 3부작 제1권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2016)이다. 2015년, 김혜순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몸이 무너지며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매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병원을 찾았으나,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세월호의 참상, 그리고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 속에서, 그녀의 고통은 육체에서 벗어나, 어떤 시적인 상태로 급격하게 전이되면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49편의 죽음의 시들을 써내려갔다. 바로 그 결과물이 여기, 이 멀쩡한 문명 세상에 균열을 불러오며, 문학적으로는 고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시편으로 묶였다.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살아서 죽은 자’의 사십구재(四十九齋)의 기록이다.
“2014년 세월호의 끔찍한 여파 속에서, 한국의 시인 김혜순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 이 재앙에 내몰린 아이들의 원혼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비극적인 작품을 써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환생을 기다려야 하는 매일 1편씩, 총 49편으로 이뤄진 한 편의 시를 구성했다. 최돈미의 탁월한 번역을 통해 우리는 샤머니즘, 모더니즘, 페미니즘이 초국가적으로 충돌하는 김혜순의 시가 ‘이전 그 누구도 노래한 적 없는 음울한 톤’으로 아우성치는 기록을 듣는다. 죽음 너머의 음색은 삶 자체로 들릴지도 모른다고, 심지어 “죽음조차도 내 안에 깊이 들어올 수 없어서” 시인은 노래한다.”
―2019 그리핀 시문학상 선정의 말에서
제2권은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2019)은 2024년 전미비평가협회도서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한 시집이다. 김혜순 시인은 구제역으로 돼지 300만 마리를 살처분한 연작시 「돼지라서 괜찮아」(『피어라 돼지』)를 포함해 오랫동안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몸’으로 시를 전개해왔다. 시인은 『날개 환상통』에서 이 몸을 ‘새’로 확장시키고 있다. “몸뚱이의 내밀성으로 시를 감지”하는 김혜순의 ‘생체시학’이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 시하다』와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에 담겨 있다면 이 책들 사이에 바로 이 시집이 있다. 시인은 이 “슬픔의 영원한 공허”(빅토리아 창,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서 권력과 성별 폭력에 맞서 끊임없이 물리적, 실존적 투쟁을 탐구하는 새 복화술의 서사적 시퀀스를 펼친다. 시각적 언어유희와 단어 배치로 특징지어진 강렬한 리듬은 구송의 대사처럼도 읽힌다. 그렇게 김혜순은 전통 민속과 신화를 현대의 사이코드라마적 현실과 혼합하여 화장식,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와 이상의 유산, 프란시스 베이컨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병원에 갇힌 공주 사이클론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날개 환상통』은 『뉴욕 타임스』 선정 ‘2023 올해 최고의 시집 5권’과 『워싱턴포스트』 선정 ‘2023 올해 최고의 시집 11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이제 보니
우리는
작별의 공동체
―「시인의 말」(『날개 환상통』, 2019)에서
“엄마는 창문, 창문은 햇살, 햇살은 손잡이, 손잡이는 발자국, 발자국은 대문. 내 그리움은 끝없이 유예된다. 내 그리움이 끝이 다음 대상으로 옮겨간다.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산문 「상실의 환유」에서
“저는 『날개 환상통』의 시를 쓰면서 유한성과 무한성을 인간과 공유하는 존재로서의 동물, 그래서 이중 구속적 존재인 동물로서의 ‘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새라는 존재가 집단무의식에서 ‘죽은 자’의 비유로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를 분열시키는 이상한 타자로 등장하지요. 새는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동물이지요. [……] 저는 이 동물, 새를 귀환과 방황이라는 두 가지를 함께 갖는 존재, 날개와 발을 함께 갖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새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 시집을 쓰면서 저를 바라보는 ‘새의 시선’을 많이 느꼈는데, 그것은 판단을 중지한 동물의 시선, 그러나 그 앞에서 죽음이 바라본다고 느끼는 저의 무의식을 쓴 것도 같습니다.”
―『김혜순의 말』(마음산책, 2023)에서
제3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After Earth Dies, Who Will Moon Orbit?)』(2022)는 시인의 가장 최근 시집으로 내년 영어판 출간(미국 뉴디렉션 출판사)을 앞두고 있다. 앞서『죽음의 자서전』과 『날개 환상통』을 영어로 옮긴 최돈미 씨가 번역을 맡았다. (최돈미 번역가는 시집 『DMZ 콜로니』로 202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앞서 영역한 김혜순 시인의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All the Garbage of the World, Unite!)』(시선집)로 2011년 루시엔스트릭 번역상을, 『죽음의 자서전』으로 2019년 루시엔스트릭 번역상과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날개 환상통』으로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김혜순 시인과 함께 받았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의 죽음을 탄식한다. 1부는 시인의 ‘엄마’가 아플 때와 돌아가신 후에 죽음을 맴돌며 적은 비탄의 시들이다. 2부에는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이, 3부에는 죽음의 바깥에서 텅 빈 사막을 헤맨 기록이 담겼다. 시인은 사적으로 경험한 병과 죽음을 투과하여 세상의 죽음을, 그 낱낱의 죽음에 숨겨진 비탄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비탄의 연대’를 도모하면서 모래처럼 부서진 생명의 조각들이 죽음 그 자체인 망각의 사막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온 힘을 다해 지켜본다. 그렇게 죽음이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야 하며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 살면서 앓는 것’임을 김혜순의 시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시는 대상 앞에서 대상이 죽기 전에 시인이 죽는 기록일 겁니다. 사물과의 작별, 세계와의 작별을 통해 잔혹한 죽음들과 맞서는, 선험적이면서 아찔하고 아득한 죽음을 구축하는 것이 시이지요. [……] 죽음만큼 아무 ‘의미’가 없는 사건이 있을까요? 의미가 없기에 그것이 죽음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쓰는 시의 팅커벨은 늘 ‘죽음’입니다. 이 죽음이라는 부재와 잠적 없이 시의 리듬은 일어나지 않지요. [……]
죽음이란 우리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야 하는 것이고,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이고, 살면서 앓는 것입니다. 제 삶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모래로서의 삶과 붙어 있는 채 말입니다. 이 삶을 앓는 것을 통해 시는 인간 존재를 다른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이끕니다. 이 시집의 시들은 육친의 병과 죽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전 세계에 미만한 죽음을 바라보고, 그 하나하나의 죽음에 얼마나 큰 비탄들이 숨어 있는지, 이 비탄을 짊어진 지구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의 생명들과 시간들과 날들이 모래처럼 망각의 사막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바라본 시들이라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김혜순(『김혜순의 말』)에서
목차
시인의 말 | 7
제1권 『죽음의 자서전』 | 9
제2권 『날개 환상통』 | 115
제3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 367
산문 「죽음의 엄마」 | 591
연보 | 60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시 한 편 한 편은 장례다. 불가능한 애도다. 나는 장례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나는 엄마의 죽음은 글쓰기로밖에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 죽음의 엄마는 글쓰기 안에 좌정한다. 죽음에 분위기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죽음에 감각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 엄마는 나를 탄생시킴으로써 나에게서 엄마를 끊은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 사건의 상처가 있었을 거다. 그 단절의 첫 사건 다음,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인 적이 있었다. 그러니 두번째 단절이라고 왜 없겠는가. 엄마는 엄마에게서 나를 두번째로 끊은 다음 나를 안고 검은 젖을 먹였다. 그다음 나는 엄마에게서 죽음을 상속받았다. 나는 또다시 작별의 상처를 상속받았다. 그러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죽음은 나의 엄마였다. 죽음은 여성형이었다. 그러니 나의 상처도 여성형일 거다. 죽음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고 부사다. 죽은 이들은 죽어서 명사가 되지 않는다. 형용사나 부사나 접속사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안기고서야 비로소 나는 시인이 된 기분이다. 죽음의 분만으로 나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용사와 부사와 접속사에 둘러싸였다. 나의 시 쓰기의 기반은 죽음이다. 부재가 반, 존재가 반인 그런 시 쓰기. 존재를 부재에, 부재를 존재에 투척하는 시 쓰기. 그리하여 죽음에 안겨 있는 시인. 아무것도 아닌 것에 안긴 아무것도 아닌 시인. 엄마가 사라진 다음 그 사라진 집으로 사라진 시인이 들어간다. 그 집에 시 언어로만 구제할 수 있는 죽어버린 죽음의 내밀한 세부가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죽어버린 관계의 낱낱의 분리가 있기나 한 것처럼. 모래가 가득하기라도 한 것처럼.
―산문 「죽음의 엄마」에서
시 한 편 한 편은 장례다. 불가능한 애도다. 나는 장례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나는 엄마의 죽음은 글쓰기로밖에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