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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7062966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3-07-17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존재와 자연
물은 얕아 모래 흔적 드러나고 / 흩날리는 향기 뜰을 덮는다 / 시간은 이제 점점 짧아지는데 / 사람 일이란 게 그런 거라서 / 생각난다 그 옛날이 / 서로 만나는 우리들이 바로 친구지 / 오늘에야 마침내 두 아들을 두게 됐구나 / 밤 오자 등불 밝혀 오직 당신과 함께 / 가을 소리 닿는 곳 없다고 말하지 마라 / 내년에 피는 건 다른 꽃일 거야
사색과 감성
내 손님일 뿐이었다는 걸 / 내일은 내가 나를 잊겠지 / 산촌의 방아소리 희미하게 들려온다 / 함께 놀던 사람 지금 몇이나 남았을까 / 살림이 가난해도 여유 있겠지 /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너인 듯 / 내년 되어 올해 지은 시를 본다면 / 구름이 오고 가도 산은 다투지 않는다 / 너를 바라보는데 애가 끊어질 듯 / 천년이 지난 뒤엔 또 살기를 바라겠지
해학과 풍자
왜 사람만 만나면 침을 흘리나 / 어째서 함께 사는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 비록 그 아이 살게 되더라도 / 왜 하필 슬프게도 무당을 후대하는가 / 이상한 맛이지 좋은 맛 아니거든 / 겉 다르고 속 다를 바에야 / 토사물 사이를 윙윙대며 다녀도 / 지나치게 펴면 네 몸이 욕을 당한다
삶과 사랑
냇물에 비친 나를 봐야지 / 지금 내 맘이 어떤지 아나 / 머물렀던 발자국 찍혀 있네 / 내 맘에 맞는 게 중요한 것 / 왜 이토록 괴로울까 / 친구들을 데리고 벼를 벤다 /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일을 찾아 보거라 / 병의 괴로움이 없다면 / 질투를 받을 바에야 비웃음을 사는 게 좋지 /
말을 몰고 가네 석양을 밟으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옛날엔 대부분 집집마다 크고 작은 마당이 있었다. 이래서 옛사람들의 글을 보면 마당에 여러 가지 식물을 심어 놓고 기르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떤 식물을 주로 심었는지 정확하게 통계를 내기는 어려운데 매화, 국화, 대나무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다양한 화초와 식용 작물도 자주 등장한다.
매화와 국화는 선비의 고아한 마음을 상징하고, 대나무는 곧은 마음이나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대표 식물이다. 이렇게 보면 마당은 단순히 집에 붙어 있는 공터가 아니라 집주인의 취향이나 생각이 담긴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당은 장소이되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마당은 늘 그 자리에 당연히 있으면서 자연을 배우고 느끼는 곳이기도 했다.
그 마당은 이제 없지만 그때의 마당은 내 추억 속에 여전히 있다. 채송화를 좋아하게 해 준 곳, 막연하나마 죽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 곳, 어울림과 조화를 느끼게 해 준 곳, 계절의 변화를 가르쳐 준 곳, 지금 나에게 눈물을 흘리게 해 준 곳. 그 마당이 그립다.
- <흩날리는 향기 뜰을 덮는다> 중에서
이십 년이면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을 시간이다. 그사이에 별의별 일도 다 겪었을 것이다. ‘세상일은 어지러워 가짜 진짜가 섞여 있고, 비와 구름은 엎치락뒤치락 인심은 새로 바뀌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비와 구름이 엎치락뒤치락 한다’는 쉽게 바뀌는 세태를 비유한 말인데 중국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빈교행(貧交行)」에서 “손을 뒤집으면 구름이 되고 엎으면 비가 된다(번수작운복수우(?手作雲覆手雨)).”라고 한 데서 나왔다.
간과 쓸개까지 내줄 것처럼 다정하게 굴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던 친구였는데 나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 버린다.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을 거라 믿으며 살지만, 막상 현실을 살다 보면 저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는 일이 많다. 그러니 얼마나 친하게 지냈는가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서거정은 ‘죽음’, ‘반목’, ‘배신’을 담은 바람이 옛 친구들을 떨어트렸어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시를 읽는 내내 대현이 생각이 났다. 우리 둘은 과거급제를 하진 않았어도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이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문과, 대현이는 이과를 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다른 길을 걸으며 사십 년을 지냈어도 결국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청운(靑雲)’, ‘푸른 구름’과 같은 벼슬은 하지 못했어도 오랜 시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잊지 않고 지내왔다.
- <서로 만나는 우리들이 바로 친구지> 중에서
들꽃
어딜 가나 핀 들꽃, 이름은 모르지만
초동과 목수의 시야를 밝혀 주지
꼭 상림원(上林苑)의 꽃들만 부귀한가?
하늘의 마음 씀씀이는 공평하다
고려 후기는 물론 한국 한시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 1396)의 시다. 이색의 온화한 성정을 볼 수 있어서 좋고,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도 마음에 든다. ‘상림원(上林苑)’은 황제를 위해 만들어 둔 동산이다. 황제의 동산이니 그 안에는 이름이 있는 꽃과 나무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 안에 있다는 것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사람이면 누구나 상림원 안의 꽃이 되고 싶어 한다. 이름을 내려고 하며 부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색은 굳이 그러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현실에 만족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옛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니까 그렇다. 그러나 이 시를 읽는 독자는 한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글을 읽을 수 없는 계층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과 같은 부류들이 보라고 쓴 시다. 이름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존재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주목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또 그 사람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체로 존중 받기에 충분하다.
- <내년에 피는 건 다른 꽃일 거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