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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57955596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0-10-3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 만년에는 시보다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일러두기
1. 단편소설
사월이
우장雨葬
오산誤算이었다
외로운 사람들
결혼 전후
하숙
일편단심
닭 쫓던 개
2. 인물평전
인간 월탄月灘
전원시인 김상용
팔로군에 종군했던 김명시 여장군의 반생기
샘골의 천사 최용신 양의 반생半生
오월의 여왕
3. 문학론
시詩의 소재에 관하여
문학의 처녀지處女地로
시詩와 난해성難解性
익명匿名 비평의 유행에 대하여
우리 예술 확립에로 매진하자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서평
의제 좌익擬制左翼
4. 일기
일기
병상일기
부록
노천명 생애(1912-1957)
노천명의 생애 흔적을 찾아서
리뷰
책속에서
오래간만에 부엌에를 내려가 내 손으로 밥을 지으며 나는 사월이가 아침저녁으로 만지던 이남박이며 칼과 도마, 사월이 손으로 빨아다 널어놓은 행주 이런 것들을 만질 때마다 사월이가 생각나서 견딜 수 없다. 마치 죽은 사람이나처럼 그렇게 마음이 언짢아서 나는 그년이 쓰던 석탄 깨뜨리는 도끼를 붙잡고는 석탄을 깨뜨리다 말고 한참이나 부엌 바닥에 앉아 울었다.
“아주머니 기집애가 뭐 동이 낫소 그까짓 거 달아난 년을 뭐 자꾸 생각하우. 내 어디 가서 내일 기집애 하나 붙들어 오리다.”
이렇게 큰 조카는 나를 위로해 주었으나 온 집이 빈 것 같고 영 마음이 붙지 않는다. 사월이년이 마루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고 반찬거리를 사 가지고 대문간에서 금방 톡 뛰어 들어올 것만 같다.
3년이란 세월이 아침저녁으로 넣어 준 정이란 참 더럽게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였던가.
“그년이 정 갈 줄 알았던들 저 시집 보낼 때 주겠다고 어거리 장 속에 넣어었던 남숙수 치마랑 노랑 법단 저고리감두 모두 내줄 걸. 그리고 제 저금 통장두 주어서 보낼 걸.”
이런 미련을 못 놓으며 그래도 사월이가 어디를 가서든지 잘만 살았으면… 하고 은근히 축원했다.
- ‘사월이’ 중에서
늙은이는 담뱃통에다 성냥을 그어대느라고 잠깐 있더니,
‘야야, 그 넷째니 뭐니 한가한 소리 하구 있지 말구 저 기지배 올챙이같이 빵꾸난 배때기나 좀 고쳐 줄 생각해라.“
박 초시네는 담뱃대를 비스듬이 물며 한 손으로 옆에 울고 앉았는 손주 딸을 앞으로 끌어오더니 치마 위로 아이 배를 쓰윽 쓸어보며,
“아가, 배 안 아프니? 에, 이쁘다, 내 새끼.”
하더니 며느리를 향해,
“저번 날부터 쥐 한 두어 마리만 잡아 맥이래두 들었는지 말았는지, 저 몬돌레 작은 기집애두 복하를 쐐서 배가 애처럼 빵꾸난 제 얼굴이 노래 댕기더니 쥐 해먹구 나서 났다는데.”
“아, 개뿐인가요? 뭐 동리 애들이 거지반 배때기가 다 불루구 색색거리는데 이 더위가 지나가구 서늘바람 나면 어련히 안 날까 봐서요.”
그 후 사날이 지난 뒤 박 초시네 가게엔 가려운 병에 바르는 무슨 약이 없느냐고 와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우장’ 중에서
마음을 줄 곳이 통째로 무너져 버린 선이에게 와서 은주라는 이 조그만 계집아이는 찬바람이 쌩쌩 도는 냉방 같은 선이의 생활에 오직 하나의 따뜻한 화롯불이었다.
울며 몇 달을 지내고 나니 살 길이 막연해졌다.
산목숨은 또 살아야 한다고 손에 끼었던 다이아 반지를 팔아 돈을 만들어 가지고 선이는 서울로 올라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동정해 주는 사람들은 관리의 부인들이었다. 살아 있는 남편의 친구들은 모두 아침 해가 오르듯이 자꾸자꾸 올라가 높이들 되었다.
“그이도 있었더면 지금쯤은 중직重職에 있게 되었을 걸.”
바깥양반끼리도 친구요, 안에서도 각별히 친한 국장 집에 가서 하루를 자고 오던 그날 밤은 말할 수 없이 선이의 마음이 설레었다.
- ‘외로운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