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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목회일반
· ISBN : 9791158090555
· 쪽수 : 360쪽
책 소개
목차
서문 _오언 스트래헌·케빈 밴후저
서론: 목회자, 신학자, 공적 인물 _케빈 밴후저
문제: 잃어버린 전망
학계: 신학의 권력과 지배자? | 교회: 목회자를 사로잡고 있는 그림 | 사회: 공적 담론의 어려움
제안: 독특한 공적 인물로서의 목회자-신학자
신학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일을 말함 | 공공: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위해 사람들과 대화함 | 목회자: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든든히 서게 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공공신학자
전망: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의 사역
목회적 관점 | 목회자-신학자가 되기 위한 실천 여섯 단계 _제럴드 히스탠드
목회자로서 신학하는 일곱 가지 방법 _조시 무디
1부 성서신학과 역사신학
1. 예언자, 제사장, 왕: 목회직에 관한 간략한 성서신학 _오언 스트래헌
구약의 옛 언약 사역
제사장: 성별된 백성을 위해 성별됨 | 예언자: 객관적 계시의 선포자 | 왕: 신적 지혜의 화신
예수의 새 언약 사역에 참여함: 신약
제사장으로서의 목회자: 은혜를 전함 | 왕으로서의 목회자: 지혜를 전함 | 예언자로서의 목회자: 진리를 전함
결론: 신학적 직분으로서의 목회직
목회적 관점 |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 _멜빈 팅커
인간의 기원: 목회자-신학자를 위한 시험 사례 _토드 윌슨
기술에 관한 실천신학 _짐 샘라
2. 학자와 성인: 목회직의 간략한 역사 _오언 스트래헌
초대교회
이레네우스와 신앙의 규칙 | 초대교회 교회 조직의 발전 | 크리소스토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 교사로서의 목회자 | 직분으로서의 목회직
중세 시대: 스콜라주의와 수도원 운동
종교개혁기의 각성: 개신교 목회자들
신학적 목자: 청교도와 진리의 실용성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 에드워즈주의자들과 목회 영역
현대의 전환: 대중주의와 전문성, 길들여진 목회직
희미한 희망의 빛: 해럴드 오켕가와 신복음주의의 대담함
결론: 어떤 목회직을 향하여?
목회적 관점 | 구원하는 믿음에 관한 신학은 우리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_웨슬리 패스터
진리를 위한 공간 _케빈 드영
2부 조직신학과 실천신학
3. 복음의 기분: 목회자-신학자의 목적 _케빈 밴후저
신학의 다양한 기분: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
현실의 목회: 직설법의 신학
이해의 목회: 하나님 말씀의 사역
하나님 말씀 읽기: 성서 해독력 | 세상 읽기: 문화 해독력 | 소설 읽기: 인간 해독력
(새) 생명의 목회: 명령법의 신학
“지혜를 얻으라” | “사랑을 더하라” |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신학의 목적: 신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목회적 관점 | 죽음에 관해 _데이비드 깁슨
진리와 선, 아름다움으로서 복음의 교리를 설교하라 _빌 카인스
설교를 위한 독서 _코닐리어스 플랜팅가
4. 하나님 집의 장인들: 목회자-신학자의 활동 _케빈 밴후저
목회적 대위임: ‘제자 삼으라’, ‘하나님의 집을 세우라’
“이 반석 위에”: 어떤 반석? 누구의 기초? | 제자들을 자라게 함: 하나님의 밭 | 성전을 세움: 하나님의 건물 | 에스라-느헤미야: 재건과 개혁 | 에베소서: 살아 있는 성전인 교회
전도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선포함
상담: 목회자의 말씀 사역 | 심방: 몸으로 행하는 말씀 사역 | 설교: 선포하는 말씀 사역
교리문답 교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가르침
예전 집례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기림
모임: 무엇이/어느 곳이/언제가 예배인가? | 기도: 정말로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 성찬: 주의 만찬
변증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를 논증함
목회적 관점 | 설교의 드라마 _가이 데이비스
강단 변증가로서의 목회자-신학자 _제이슨 후드
결론: 공공신학자로서의 목회자에 관한 55개 논제 _케빈 밴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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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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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케빈은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대부분은 그레이프라이어스 보비(충견 보비를 기념하는 조각상―옮긴이)를 보기 위해 온다]를 방문한 두 미국인 관광객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 부부는 묘지를 둘러보던 참이었는데 그중 아내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여보, 여기 좀 보세요. 두 사람을 한 무덤 안에 묻었대요.” 남편은 “왜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물었다. 여자는 “그렇게 쓰여 있어요. ‘여기 한 목회자와 한 신학자가 누워 있다’고 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가 우스운 까닭, 즉 여자가 그렇게 혼동한 원인을 이해한다면 이 이야기가 희극이 아니라 비극임을 깨달을 것이다. 평범한 미국인은 목회자가 신학자라고, 혹은 신학자가 목회자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이 구분을 교회사 안에서 대부분의 시기 동안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핵심적 역설이 존재한다. 목회자는 (오늘날 대부분의 유명인사들과 달리)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고, 자신에게 관심이 모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서 관심이 멀어지도록 말해야 하는 공적 인물이다. 목회자는 사람들을 자신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 주장을 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대함으로써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그것을 축소시킴으로써 성공을 거둔다.
일부 독자들은 우리의 전망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목회자들은 너무 바쁘거나 여러 한계 때문에 우리가 주장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우려를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시간이나 에너지, 타고난 지능이 아니라 전망과 우선순위라고 생각한다. 신학은 목회직에서 사치품이나 (자동차 가죽 시트처럼) 추가적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운전대처럼) 표준적인 필수요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