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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545321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24-11-01
책 소개
목차
변명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이 소설은 타자에 의해 규정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이기심과 추악한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한 개인이, 한 인간이 타자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스스로 규정하는 자아와 타자가 규정하는 자아 사이의 차이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K는 이러한 불일치 속에서 끝없는 불행과 고뇌를 겪으며 몸부림친다. 그는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 하지만, 객관이라고 믿는 것이 타인의 조작과 왜곡을 통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점점 더 깨닫게 된다. 경찰관 K는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내적 갈등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의 고통은 개인의 것이지만, 그가 몸부림치는 주체성과 타자의 경계는 우리 모두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이다.
마침내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타자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불가피한 타자와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여러 해 동안 길을 잃고 헤맸다. 잃어버린 시간, 방황의 시간을 통해 때로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때로는 자신을 비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 사건을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살아가려 했었고, 심지어는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려고도 노력했다.
사무실은 회색 블라인드와 패널 벽, 갈색 응접탁자와 자이언트 소파, 녹색 부직포와 유리로 덮인 회의 탁자, 그리고 업무용 컴퓨터가 놓인 책상 뒤에 걸린 태극기와 국정지표로, 여전히 관공서의 모습 그대로였다. 시답지 않은 서류를 챙기다가 의식 한쪽에서 멈춰있던 상념이 오래된 전구처럼 깜박거렸다. 알 수 없는 기분에 휘청거리고 서류의 글자가 흐릿해지면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였다.
무난한 경찰청 입성이었고 커리어 전망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서에서 어떤 요인이, 또는 어떤 우연이, 내 인생 최초의 파멸을 불러왔다. 스스로도 몰랐던 어떤 개성과 언어적 태도가 그 추락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부패나 직권남용이라는 형사법적 법률위반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 부서로의 부임이 시작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몰락은 내면에서 점차 진행되고 있었다. 입신양명에 대한 자신은 물론 주변의 기대가 내 능력과 의지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면을 위로하거나 손을 내밀어 줄 누구도 없는 듯했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계속해서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버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