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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608989
· 쪽수 : 296쪽
목차
『망이와 망소이』를 펴내며
제1장 미륵뫼
1. 부역(賦役)
2. 실종과 죽음
3. 누이를 찾아서
4. 김백호
5. 징치(懲治)
6. 출분(出奔)
제2장 수릿날
1. 두 아들 68
2. 야단법석(野壇法席)
3. 솔이
4. 저밤이
5. 씨름판
제3장 돌개바람
1. 승마
2. 짱똘이
3. 철소(鐵所)
4. 불청객
5. 꿈과 현실
제4장 어두운 밤
1. 사랑채 손님
2. 몸종 어금이
3. 밤에 찾아온 사람들
4. 마음이 가는 곳
제5장 둔주
1. 울분
2. 비녀(婢女)
3. 이별
4. 출향(出鄕)
저자소개
책속에서
명학소 사람들이 유성현의 삼지천에서 부역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늦가을부터였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 가운데 열여섯 살에서 쉰아홉 살까지의 남정네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역에 동원되었다. 이번 부역은 지난 여름 큰물이 져서 폐허가 된 현청의 공해전(公?田)을 복구하기 위함이었다. 부역 기간이 길고 일이 힘들 뿐더러, 감독하는 현청의 구실아치들이 가혹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역을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했다. 당연하게 부역에 대한 고을 사람들의 원성도 드높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와 원망에도 불구하고 부역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역은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시작되어 이듬해 따지기때가 되어서야 끝나는데, 부역꾼들은 길을 닦거나 다리를 놓고, 보를 막거나 둑을 쌓는 일 등에 동원되었다. 성이나 현청의 담을 보수하고, 현청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나 땔나무를 벌채하는 일도 부역꾼들의 몫이었다.
미륵뫼와 그의 아버지 미조쇠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매일 20리 길이 넘는 삼지천으로 부역을 하러 나갔다. 삼지천에는 명학소 6개 마을 사람들 외에도 미화부곡과 정을부곡, 갑호향, 상덕향 사람들이 부역을 나왔다. 그들은 현청에서 나온 감독들에게 점호를 받은 다음, 홍수에 휩쓸려 가력되어 버린 황무한 땅을 하루 종일 파 일구어야 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그들은 꽁꽁 얼어붙은 땅바닥을 찍어서 돌과 자갈을 골라내고 바위를 들어냈다.
그리고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둑을 새로 쌓았다. 가쁜 숨을 돌리기 위해 잠깐 일손이라도 멈출라치면 군졸과 관노 들이 도끼눈을 뜨고 사정없이 훌닦아세웠다.
그렇다고 부역을 빠질 수도 없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거나 병이 나더라도 다들 엔간해선 부역을 빠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역에서 빠지면 그 대신 삼베나 벼를 바쳐야 하는데, 그 대가가 너무나 무거웠다.
이월 스무 날이었다. 그날은 현청의 군졸과 관노 들이 다른 때보다 더 유난스럽게 설쳐댔다. 그날따라 현령 김양기의 아들 김백호가 삼지천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큰 소리로 망소이를 부추겼다.
“그간 심이 많이 늘었구나! 저것두 한 번 들어 봐라!”
저밤이 아저씨가 감탄한 얼굴로 제일 큰 들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아직 한 번두 들어보지 못했어유!”
망소이가 약간 자신 없는 얼굴로 다시 다섯 번째 들돌 앞으로 가서 섰다. 그는 몇 번 깊게 숨을 쉰 다음 결연한 얼굴로 들돌을 붙안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벌겋게 충혈되고, 온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 뒤틀렸다. 눈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이윽고 들돌이 움찔움찔 조금 움직였다. 이얏! 망소이는 있는 힘을 다 모아 한꺼번에 용을 쓰며 허리를 폈다. 또다시 들돌이 불끈 들렸다.
와아!
햐아!
장사 났다!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경탄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놀랐다. 이제 열여덟 살밖에 안 된 망소이가 그 큰 들돌을 들어올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네 심이 망이에 못지않구나!”
“명학소에 형제 장사가 났다!”
“정말 장하다!”
-그러나 아무리 철물을 생산하기가 싫고 공납에 원한이 사무쳐도 철물을 공납하지 않을 방도는 없었다. 공납해야 할 철물을 미처 다 준비하지 못했을 때엔 철물을 더 생산한 일가친척이나 이웃집에서 꾸어 오든지, 아니면 장터에 나가서 다른 물건과 바꾸어서라도 반드시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공납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금방 범강장달 같은 군졸과 사령들에게 잡혀가, 인정사정없이 곤장을 맞고 옥사에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솔을 거느리고 남몰래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도망쳐 가서 살 곳도 없지만, 도망친 사람의 공물을 뒤에 남은 일가친척들에게 부담시키는데, 어떻게 함부로 도망을 치겠는가.
금년에도 공납물을 바쳐야 할 날이 차츰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현청의 호정(戶正)이나 부호정(副戶正) 같이 제법 지위가 높은 향리들이 아랫것들을 거느리고 몇 번이나 명학소를 찾아오고, 창사(倉史)와 공수사(公須史) 등이 사흘거리로 명학소를 들락거렸다. 철물 공납에 차질이 없도록 독려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