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 ISBN : 9791158770693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18-12-10
책 소개
목차
1. 울고 웃는 노년의 일상
<별이 빛나는 밤>의 <절규> | 노거수(老巨樹)에 서린 한(恨)을 읽다 | 멜로드라마 | 금혼식, 그리고 833원 | 김장김치가 서운해 하는 까닭 | 수박 | 주부도 예술가다 | ‘카톡 낚시’ | 말을 할까 말까? | 우리 시대 마지막 마님의 백수 잔치 | 산수(傘壽)의 원정 오찬
2. 세월이 갈수록 깊어지는 지혜
집 | 젊은 아파트, 늙은 아파트 | 마스크 패션 시대가 오는가 | 쑥 버무리 | 노인도 바쁘다 | 미운 사람 안 되기 | 포토샵의 두 얼굴 | 그래서 나는 억울하다 | ‘어르신’과 호칭의 인플레이션 | 조촐한 의례
3. 낯선 곳에서 만난 친근한 풍경
꽃 따라 철 따라 | 작약은 양귀비를 시녀 삼아… | 8백 세로 도전한 일본 칸사이 3박 4일 | 봄꽃을 담은 마음 |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 석모도 쑥, 삼근리 다슬기 | 애매한 일본, 오키나와 | 문경 새재 총장님 | 너구리 온천 | 대마도 1박 2일
4. 눈 감으면 떠오르는 추억들
미국서 달려 온 ‘소녀시대’ | 친구는 좋다 | 마산에 산다는 정자야! | 아버지와 수능 | 노년의 축복 손녀 | 서로 다른 빛깔의 두 축복 | 60년 만의 ‘첫사랑’ | 수다는 마음을 고쳐준다 | 한여름 밤의 꿈 | 계급장 단상 | 요즘 젊은 세대는 버릇이 없다 | 언니도 장로님 | 장례식의 품격
저자소개
책속에서
혼자 사는 70대의 예술가.
대단하다면 대단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런 분만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 머리 손질에 여념이 없는 원장님도 ‘대단한 예술가’라면 ‘대단한 예술가’에 들어갈 것이다.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면서 가정을 꾸려나가는 주부, 거기에다 남다른 미용기술사, 1인기업가 겸 경영자, 라고 하니 “호호호, 듣고 보니까 그럴 듯하네요”라면서 무척 좋아했다.
“조금만 영업력을 높이면 나무랄 데가 없겠어요. 옆집은 항상 붐비는 데 여기는 손님이 거의 없잖아요?” 하자, 그건 옆집 모두 다 1만 원 싸게 받기 때문이라면서 한때 명동 대형 미용실에서 일했던 솜씨를 동네 무명 미용사와 같은 가격에 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호하게 자르는 것이었다.
명동 일대의 격심한 경쟁에 지쳐 숨이라도 좀 돌리려고 이곳에 개업을 한 것이라고 설명한 원장은 나보고 “손님도 무슨 일인가를 하시는 분 같다”며 묻는 것이었다.
“많은 일을 했죠”라면서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아 길렀으며 한 가정을 지금까지 큰 탈 없이 꾸려오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따지고 보면 나도 남편이라는 작품, 자식이라는 작품, 가정이라는 작품을 만들어온 일테면 주부 예술가라고 말하고는 쿡쿡 웃음을 깨물었다.
망팔십(望八十) 인생 가운데 50년을 한 우물만 파면서 만든 ‘작품’을 사회에 내보낸 가정주부는 어느 분야, 어떤 인물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이런 이들에 주는 ‘주부예술가 상’은 왜 없는 것일까?
류큐왕국의 대표적인 흔적은 왕궁이었던 수리성(首里城)이다. 인류문화재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 성의 정전은 오키나와 전투 때 불타버린 것을 1992년 오키나와 반환 20주년 때 옛 모습 그대로 건축한 것이다. 다만 우람한 성벽과 각 성문은 옛 모습 그대로여서 유네스코에 등재가 가능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일본 안에 위치한 아주 애매한 일본’으로 보였다. 류큐 사투리가 표준 일상어로 쓰이고 나하시 한복판에 수리성이라는 류큐 궁전이 서있는 것도 그렇지만 본섬의 20%가 미군 기지인 데다가 버젓하게 아메리칸 빌리지를 건설하여 마치 미국 샌디에이고 해군기지 마을을 연상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일본이라기에는 애매한 점이 많았다.
명치유신 이전부터 일본이 눈독을 들인 곳이, 남으로는 류큐왕국과 대만, 서쪽으로는 한반도였다. 그 세 곳 가운데 오직 류큐만이 일본에 동화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애매함은 당분간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일본은 류큐왕국을 집어삼키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아메리칸 빌리지 선셋 비치에서 바라본 석양은 너무 아름다우면서 처연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50여 년.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는 대학동기동창 모임 장소를 멀기는 하지만 수유리 4·19묘역 근처로 잡아 함께 점심을 먹고 4·19묘역으로 향했다. 그곳에 영면한 우리 세대 영웅들의 사진과 생년월일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당시 가슴 서늘하고 애잔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다. 4·19에 이은 5·16 이후에도 학생 데모는 그치지 않았다. 그 데모 물결 속에서도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주역 역시 데모에 앞장섰던 젊은 세대였다. 기성세대로부터 “싸가지 없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그들은 역시를 창조했고 또 하고 있다.
4·19주역세대의 막내였던 나도 이제 ‘망팔심’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자식들에게 우리 세대가 겪은 간난신고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부모 세대가 겪은 간난신고를 되새겨 보기엔 그들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내 두 아들도 벌써 40대 중반, 기성세대에 진입했다. 이처럼 우리는 세대가 세 번 바뀌는 현장에 서 있다. 시대의 주역이 우리에게서 우리 자식에게로, 다시 손주 세대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그러나 그래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무대 뒤로 퇴장하는 세대가 새로 등장하는 세대에 대한 의무감으로 바통 터치하는 진리는 바로 “요즘 젊은이들은 알 수도 없고 싸가지도 없다!”이다. 이 말을 진리라고 굳이 표현하는 것은 1세기 중엽 화산폭발로 사라진 고대 도시 폼페이 유적에서도 비슷한 뜻의 낙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생명력은 이처럼 무려 2천 년이 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리라고 해도 망발이 아닌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