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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5860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3-03-13
책 소개
목차
제1부
곡선•13/고비의 배후•14/시간이 당신을•16/사람을 쓰는 일•18/적당한 비율•20/누진세•22/구조•23/신암 일기•24/슬픔을 계산한다•26/피곤은 이제 피곤하다•28/수필을 위하여•30/자연산 밥 냄새에 대한 기억•32/고요•34/날이 풀렸다•36/저녁에게•38
제2부
나는 슬픔을 독학했다•41/바람의 주소•42/어디를 살아도•44/다음 장면을 주세요•46/나를 만지다•47/기억은 해석일 뿐이다•50/헤어진 다음날•51/이월된 쓸쓸•54/기회가 있었다•56/비극은 개선된다•58/세월•60/검은 물•62/입장•64/당신의 마음•66/나는 통증으로 출입한다•68
제3부
뫼비우스의 띠•71/실천이란 무엇입니까•72/낮엔 거의 현실•74/멸망한 후•76/핑크 핑크 Pink Fink•78/감정증후군•80/괴물이 되어 간다•83/조금씩 지워지는 세상•84/이해하면 섬뜩한 인생•86/비의 전성기•88/쓸쓸한 오후•90/그대에게•92/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 아무거나 한다•94/절벽•96
제4부
오차 범위 안에 있는 오해들•99/설사하는 말•100/소란과 고요•102/나비 글씨체•104/구석에게•107/나는 아직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108/폐가와 폐허•110/불후의 명자꽃•112/영혼의 크기•114/꽃나무 선승•116/합리적인 환상통•118/화를 채굴하는 일•120/검은 감정들•122
해설 우대식(시인)•123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겨우 시는 조금 쓸 줄 알지만 사람을 쓰는 일에는 젬병이다
어젯밤에도 사람을 만나 쓰다가 비문이 생겼고 그 비문 때문에 싸웠다
문장은 오해와 헛소문으로 길게 이어졌다
사람을 쓰다가 꾸겨서 버리는 일
생각의 휴지통에서 꾸겨진 사람을 다시 펴서 살펴보는 일
저 꾸겨진 사람의 문장을 포기하면 나도 끝나는 것이다
끝나진 않지만 사는 일에서 단맛은 빠지는 꼴이겠지
다음날 전화해서 사람을 만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밤새 고민해서 완성한 문장 하나씩을 슬몃 눈빛으로 교환한다
몇 분 동안 말 대신 눈이 일을 한다
감정을 써서 마음 한 켠 얻는 이 지난한 문법은
천 년이 지나도 개정판이 나오지 않는다
창밖에서 바람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미소를 속기로 기록해서
입구와 모서리에 바른다
― 「사람을 쓰는 일」 전문
오래 살수록 삶의 누진세가 붙어서
가는 순간
눈부신 이 생의 발전소에 납부해야 하는
소비한 삶의 전력량에 대한 납부액은 많을 것이다
가야 하는데
숨이 잘 끊어지지 않는다면
완불을 못한 채 체납하고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리라
― 「누진세」 전문
신암에 들어와 커피 집 차린 지 십 년이 지났다
나의 상업은 기술도 없이 웃는 것
무엇을 이기려는 마음을 매일 거세하는 것
좋은 기분은 노력하면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노력이란
내 감정 절반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내일의 날씨를 매일 검색했고 종교도 없이 지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들이지만 오히려
십 년 후의 내 모습은 잘 보였다
지금의 모습이 십 년 후의 모습이라고 믿었기에
내 헛헛한 웃음의 주기가 길어질수록 남은 생의 표정은 단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신암에 살면서 배웠다
내가 부풀어서
그늘이 없이
구석이 없이
터지기 직전의 그 무엇이 되었을 때
그 압력은
내가 매일 만들어냈던 헛헛한 웃음에서 온다는 것을 느꼈다
화려한 슬픔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 「신암 일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