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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6218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3-11-10
책 소개
목차
제1부
아버지의 붓•13/냄비•14/회전근개 증후군•16/업로드•17/바람개비•18/빗자루에 관한 명상•20/누수•21/혓바늘•22/종이 피아노•24/번짐에 대하여•25/연기가 온다•26/바다를 지우다•27/토성의 하루•28/고사목•30/문장을 줍다•31/흔들리는 길•32
제2부
리셋 증후군•35/물집에 갇히다•36/도마 위에서•37/망각의 숲•38/어떤 출구•39/벽화•40/눈앞에 산•42/토끼전을 읽다•43/폐문•44/봄, 알레르기•45/비 내리는 병상•46/귀벌레•48/새장이 되다•49/돌을 갈며•50/가시덤불 속에 핀 꽃•51/각인•52
제3부
어떤 이별•55/악몽을 꾸다•56/물병자리•57/종이집•58/충전 시간•59/질투의 여신•60/담쟁이•61/저녁•62/우중 터널•63/표류•64/염소의 노래•65/그림자를 지우다•66/장롱•68/이명•69/입술•70/겨울 눈•71/오십견•72
제4부
꽃 진 후•75/땅끝에 와서•76/선풍기•77/운신의 폭•78/선인장•79/웃풍의 기억•80/시간을 해동하다•81/어떤 반전•82/발치 전•83/폐선로, 푸른 길에서•84/이별 후•85/노루발•86/겨울 창문•88/로드킬•89/눈치 없이•90/4월, 대밭에서•91/빨래 널기•92
해설 우대식(시인)•93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을음이라 써놓고
그리움으로 읽는다
오래된 바닥에 눌어붙은 불의 기억
닦는다 속살 보일 때
붉어지는 네 낯빛
들썩이는 뚜껑을 슬며시 들추면
일어서는 거품 속에서
소리가 흘러내려
불현듯 나도 모르게
닦아낸 말의 무늬
기울어진 길 위로 타닥타닥 피는 어둠
까맣게 타버린 냄비 속 감자 같은
더 이상 씻을 수 없는
하루를 벗겨낸다
― 「냄비」 전문
이파리 파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밑창 떨어진 작업화가 덜렁거리고 매듭 풀린 신발 끈을 힘껏 묶는다 온종일 투덜거리며 소처럼 걷는다 덜컹덜컹 십 톤 화물 트럭이 지나간다 내 걸음을 늦추며 내 손목을 잡으며 컨베이어벨트 위 석탄과 함께 휩쓸려 버린 스물네 살의 청춘이 깜박깜박 띄엄띄엄 SOS 신호를 보내온다 재수 없어 아무도 몰라 싱크홀에 빠졌나? 막막한 생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가 사라진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아래 어디쯤 가늘고 긴 비명이 통로를 채우며 빠르게 달려온다 오! 신이시여 입안에 핏덩이가 느껴지고, 비린내가 몰려온다 토악질을 견디면서 냄새를 견디면서 풀어진 녹 끈을 힘껏 다시 묶는다 개들이 짖어대고 벌레들이 수군거린다 “너라고 다를 것 같아, 너라고 별수 있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공중을 울린다 누구도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벌써 알았지만, 나는 퍼덕거리며 이를 물고 버틴다 조금만 더 손을 내밀면 그의 손을 잡을 수 있겠다 떨어진 번호표를 주워 들고 긴 줄 가운데 아무도 몰래 슬며시 끼어들 수 있을 거다
봄밤에 불 켜고 도는
내 안의 바람개비
― 「바람개비」 전문
날 새기 전 추모시를 다 쓰지 못했다
망자의 혼백이 한기를 불렀는지
눈보라 휘몰아친다, 기억의 사각 위에
촛불을 켜려다가 그만 주저앉는다
나는 쓴다, 환각을 착시를 흔들림을
흐릿한 물안개처럼 입김을 내뿜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을까
목소리는 바람 한 점 불러내지 못했고
눈빛은 골목길 안에 토끼처럼 갇혔다
촘촘하게 박히는 이 뜨거운 느낌은
아무래도 여기서 기도를 멈춰야겠다
무엇도 내려오지 않는 막막한 새벽하늘
― 「문장을 줍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