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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6294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4-01-15
책 소개
목차
제1부
가뭄·13/달과 선풍기·14/일요일 오전·16/먼지·17/홍시·18/창을 닫으러 갔다·20/평일·21/작은 사람·22/우리들의 천국·24/잠이 나를 잘 때까지·25/불면이라니요·26/연휴·28/소파·29/편지·30/가로등과 나·32
제2부
싶었다·35/절대값 K·36/수학 시간·38/신림역 2번 출구·40/접속·42/보통의 아침·43/내성발톱·44/백색소음·46/산책·48/공중전화·50/실업·51/비둘기·52/개망초·54/나 없는 동안·56/곰팡이·58
제3부
그런 날이·61/고양이의 붉은 눈빛이 어둠을 뚫고·62/머리를 처박고·64/사진·65/나를 위한 일·66/냄새·68/창에서 나는·69/낮 12시·70/통증·72/소문·73/12는 13을 모르고·74/연말정산·76/개와 늑대의 시간·78/현무암·79/손톱을 깎는다·80/좋겠다·82
제4부
무성영화·85/김상달 씨·86/가시·88/야자수가 있는 집·89/문상·90/세신(洗身)·92/공원·94/거제 수국·95/등·96/국화·98/합장·99/젓가락·100/겨를·102/순서·104
해설 박진희(문학평론가)·10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저수지 바닥에 뼈 한 구 누워 있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얼음 밑에 가라앉은 아이인가
아이를 등지고 간 여자인가
염산을 마신 태양의 혀가 측백나무들에 옮겨붙는다
제 속을 다 파먹은 저수지
머리카락이 수세미처럼 구겨진다
표정 없는 얼굴이 마른 장미처럼 야윈다
내 몸속 빈집마다 저수지를 만든다
마디마디 뿌옇게 물이 차오른다
가라앉는다 가라앉는다 가라앉는다
― 「가뭄」 전문
지상의 아내여
이곳은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이 핍니다
아무것도 흔들지 않는 바람이 붑니다
구름 위에서 눈처럼 날리는 밥을 먹습니다
지난여름 함께 갔던 나이아가라 폭포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동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다녀왔습니다
유진이의 늦은 하굣길을 같이 걸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습니다
많은 것이 있고 많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신이 없습니다
나의 아내여
이제는 아프지 않습니다 편안합니다
조금은 잊어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 바람이 불면
눈이 밥처럼 펄펄펄 날리면
그때 잠시 꺼내 보아도 좋겠습니다
나는 잘 있습니다
― 「편지」 전문
구구구, 구구구
늙은 남자가 비둘기를 불러 모은다
한 손에는 비둘기 밥을 들고
어디서 이 많은 비둘기들이 날아왔을까
멀리서 온 비둘기도 보인다
늙은 남자는 비둘기 밥으로 대한민국을 그린다
비둘기들이 대한민국을 점령한다
늙은 남자는 더 큰 소리로 더 많은 모이로 비둘기를 부른다
놀던 아이들이 슬금슬금 사라진다
볕을 쬐던 사람들도 더 이상 모이지 않는다
살찐 비둘기들은 늙은 남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공터를 가득 메운 구구구구 소리
지나가던 남자가 공을 차듯 비둘기를 발로 찬다
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흩어진 아이들이 다시 모인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햇빛이 멈칫거리며 나온다
남자가 비둘기 떼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비둘기들이 요란하게 늙은 남자 뒤로 날아오른다
노인은 만국기가 꽂힌 자전거를 타고
비둘기 속으로 사라진다
― 「비둘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