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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7222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5-11-21
책 소개
목차
제1부
뼈 없는 것은 아름답다 13/그림자 14/뱀 달리다 16/소나무 18/헛꿈 20/사람의 풍경 22/안개 24/지독한 소음 26/나무와 나무 사이 28/오징어 게임 30/겨울 자작나무 32/폐타이어 34/오래된 행복 36/죽음의 일터 38
제2부
사랑이 온다 41/인간의 섬 42/사라진 손 44/옆집 개 46/기막힌 대화 48/망치 50/웃음 52/마네킹 54/지금은 다만 56/비 온 뒤 58/너도밤나무 잎사귀 허옇게 지는 밤 60/거의 평범한 이야기 62/시를 놓치다 64/지렁이 66
제3부
돌멩이 삼킨 강물 69/마음 70/서시 72/빙폭 74/오일장 76/그리운 날엔 78/그 사람 80/배꽃 81/손에게 82/술 당기는 날 84/봄 86/지워진 입 88/봄날 오후 90/하루살이 92
제4부
홍시 95/가난한 부뚜막 96/젖떼기 아이를 등에 업고 98/지리산 100/경칩 즈음 101/연꽃 102/남녘 바다 104/그 사랑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106/단맛 떨어지는 날 108/부탁이야 110/독도 112/상실의 밤 114
해설 유인실(시인·문학평론가) 115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설 엿보기]
문학에서 서정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정시는 이전에도 그러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해서 읽히고 있으며, 미래에도 읽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서정성’이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정성은 보편적이면서도, 개인마다 세계에 대한 의미와 해석이 다른 특별한 개별성을 지니는 복합적인 감성이기 때문에, 시인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경험의 형상화 방식이 각기 다른 것도 그 이유의 하나로 작용한다. 즉 서정성은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 속에서 생성된 감정을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보편적인 미학으로 표현해 내는 시학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회권이 다섯 번째 출간하는 이번 시집 제목은 『사람의 풍경』이다. 인문학에서 ‘풍경’이라는 말은 풍부한 이론이 함축된 어휘이다. 일상에서 풍경이라는 단어는 주체의 시선에 포착되는 특별한 정경이나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장면이 아닌, 자아와 대상을 자각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인식의 개념이다. 즉 풍경은 단순히 자연의 장면을 지칭하는 실체가 아니라 대상과 주체가 분리된 자각의 순간에 경험되는 것이며, 그 경험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조적 거리를 확보할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도 풍경이 있다
창밖의 들녘 같고,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오늘도 사내는 거리 한구석에 앉아
지나가다 들르는 사람들에게
사람의 풍경을 그려준다
햇살처럼 반짝였던 지난 아름다운 세월이며
꿈처럼 흘러가 버린 옛이야기
그 안에 숲속의 작은 새처럼 숨겨진
잔주름이며 옅은 웃음기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삶의 내력까지
사내는 한 손에 연필을
다른 한 손엔 지우개를 쥐고
가볍고 부드러운 터치로
수없이 바라보고, 그리고, 쳐다보고, 다듬는다
― 「사람의 풍경」 부분
인용 시는 사람의 풍경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시적 주체와 대상(타자)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리타니 고진은 일찍이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세계(대상)와 자신을 ‘거리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생길 때 비로소 ‘풍경’이 탄생한다는 의미이다. 즉 풍경의 발견은 나와 대상과의 거리가 만들어낸 자각, 즉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 구조이다. 그러므로 풍경은 분리로 인해 소외감과 고독감을 전제할 뿐만 아니라 주체와 대상의 사이에 발견되는 새로운 자각을 수반하게 된다.
― 유인실(시인·문학평론가)
본시 뼈 없는 것은 참 아름답다
산촌이든 조합된 도시든
춘삼월 고향마을에 내리는 눈발이라든지
먼바다 거품 무는 백색 파도라든지
봄비가 그렇고 꽃잎이 그렇고
가난한 농가 굴뚝에서의 저녁 짓는 연기며
단숨에 창 넘어가는 아기 웃음이 그렇고
하얀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며
바람에 우는 풍경 소리와
들창 틈으로 파고드는 뽀얀 달빛
한여름 밤에 피워올린 모닥불
바람의 호명에 따라 불려 다니는 조각구름이
어쩌면 제멋에 겨워 지순하게 웃어대는
거울 속 나와 닮기도 하여
내가 헤벌쭉 입 벌려 웃으면
이리 흥 저리 흥 따라 하는 저것을
과히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인정의 빛깔 물씬 뿜어내는 저 방글거리는 얼굴을
— 「뼈 없는 것은 아름답다」 전문
생일을 바로 앞둔 날이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숨졌다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다
하청 직원으로 혼자 작업하다 숨졌다
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숨졌다
먹고살려고 일하다가 숨졌다
죽도록 일만 하다가 숨졌다
대책 없이 숨졌다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숨졌다
누군가 죽었던 그 자리에 숨졌다
늘어나는 죽음들을 절망하며 숨졌다
이다음엔 또 누가 죽을지,
그 두려움 속에 떨며 숨졌다
그 사이,
열차는 들어왔다가 다시 떠났다
죽음의 일터였다
— 「죽음의 일터」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