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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희곡 > 외국희곡
· ISBN : 9791159924750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6-01-09
책 소개
사카모토 유지의 희곡 《또 여기인가》
말과 말 사이의 침묵에 숨겨진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
2018년 도쿄 DDD 아오야마 크로스 씨어터 초연 / 2025년 LG아트센터 서울 낭독공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희곡 《또 여기인가》가 출간된다. 《또 여기인가》는 사카모토 유지가 2018년, 배우이자 오랜 친구의 의뢰로 집필한 작품으로, 그가 쓴 유일한 본격 희곡이다.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현대인이 겪는 고독과 감정, 관계의 본질을 섬세하게 구축해 온 사카모토 유지는 연극이라는 형식 안에서도 작가 특유의 세계를 성공적으로 펼쳐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오해) 속에서도, 나를 닮은 타인을 발견하고 끝내 손을 맞잡게 되는 찰나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제목인 ‘또 여기인가’는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우리의 삶을 은유한다.
2018년 도쿄 DDD 아오야마 크로스 씨어터에서 초연된 《또 여기인가》는 2026년 도쿄에서 재공연된다. 한국에서는 2026년 본공연을 앞두고 2025년 12월 4일, LG아트센터 서울 스튜디오에서 낭독공연으로 먼저 소개되었다. 연출 김정, 김정화·박경주·한현진·오남영 배우가 참여해 텍스트의 리듬과 대사의 밀도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였고 26년 1월 25일 알마출판사에서 앙코르 낭독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단행본 출간은 무대 경험을 넘어, 작품을 ‘읽는 희곡’으로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네 사람의 엇갈리고 이어지는 마음
도쿄 외곽의 한 주유소 서비스룸. 여름 저녁, 주유소를 운영하는 지카스기와 아르바이트생 나루미가 무료하고 어딘가 어긋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 갑작스럽게 네모리와 시메노가 찾아온다. 네모리는 지카스기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형으로, 소설가다.
두 형제의 대화는 처음부터 엇박자를 낸다. 사소한 말다툼과 농담,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반복되고, 인물들은 끊임없이 빗겨 간다. 네모리는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원인이 의료사고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병원을 고소하자고 설득하지만, 지카스기는 그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엉뚱한 데에 주의를 빼앗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버지의 병과 간병 그리고 죽음 등을 둘러싼 기억과 책임의 문제들이 놓여 있다. 네모리는 의료사고의 증거를 모아 소송을 준비하려 하지만, 그의 말에는 개인적인 분노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다. 한편 시메노는 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로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끝내 명확한 진실을 내놓지 않고, 대화가 깊어질수록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때 어딘가 억눌린 듯 보이는 지카스키가 알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를 하고 급기야 주유소에 휘발유를 뿌리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는데...
그림으로 완성된 활자극장
《또 여기인가》의 표지 중앙에는 낡은 선풍기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파편화된 언어들과 사건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있다. 정지된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회전하는 선풍기는, 반복되는 일상, 되풀이되는 질문, 그리고 “또 여기인가”라는 제목처럼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도 계속 흔들리는 인간관계를 은유하며, 극 전반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알마의 희곡 시리즈 Graphic Dionysus
‘GD’는 Graphic Dionysus의 약자로, “아름다운 가상을 만들어내는 활자 극장”을 표상하는 알마의 새로운 희곡 시리즈입니다. 이를 통해 희곡이란 텍스트를 책이라는 무대 공간에서 연출해내고자 하며, GD 시리즈가 독자의 삶이란 무대 공간에서 각자의 ‘아름다운 가상’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대본을 쓴다. 연출가와 배우와 디자이너도 작품을 쓴다. 그리고 관객도 연극을 쓴다. 만약 200명의 관객이 있다면, 거기에는 200개의 연극이 있는 것이다.” _폴라 보겔(Paula Vogel)
목차
작가의 말 5
등장인물 11
1 31
2 83
3 123
4 153
5 191
책속에서
네모리
그쪽 어머니라고 해야 하나, 그분이랑 합치시기 전에, 그러니까 그쪽이 태어나기 전에, 그 이전의 가족이랄까, 그 가족의 아들이거든요, 최초 가족의 아들, 지금 내가 하는 말 이해돼요?
지카스기
(고개를 갸우뚱한다)
네모리
음, 좀 이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배다른 형제인데, 내가 형, 그쪽이 동생인 거예요.
지카스기
아, 아아. 아아 아아 아아.
네모리
응? 이해했어요?
지카스기
책 만드는 사람이다.
네모리
네, 맞아요, 일반적으로는 작가라고 하는데. 소설가거든요. 음, 도쿄에서 온 네모리라고 합니다.
네모리
그날 일을 기억하는 고토 씨라는 장기 입원 환자가 있었어요. 그날은 평창올림픽 9일째였고, 남자 피겨 스케이트 프리 프로그램에서 하뉴 유즈루 선수가 금메달을 딴 날이었어요. 오후 1시 43분. 입원 중인 환자들은 다들 텔레비전 앞에 모여 하뉴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죠. 그런데 고토 씨는 관심이 없었대요. 그래서 들었던 거예요, 복도를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의 발소리를. 입원 생활이 길다 보니 바로 알겠더래요. 무슨 일이 생겼구나. 고토 씨는 무슨 일인지 보러 갔어요. 6층으로 올라가 호흡기내과 병동으로 갔는데, 거기서 간호사 한 명과 부딪혔어요. 간호사는 그때 뭔가를 떨어뜨렸고, 얼른 주워서 자리를 떴어요. 그런데, 어라? 고토 씨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간호사가 들고 있던 인공호흡기 튜브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게 있었거든요. 매듭이요. 고토씨는 캠핑이 취미라 그 매듭의 이름도 알았어요. 그건 버터플라이 매듭이었어요. 하뉴 선수의 금메달 소식에 병실은 소란스러웠지만, 고토 씨는 그 순간에도, 매듭이 있는 튜브를 들고 간 간호사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간호사가 쭈그리고 앉았을 때 살짝 가슴이 보였대요. 원래 그 병원 간호사들은 옷을, 간호사 전용 홈쇼핑인 ‘앙피 르미에’에서 공동구매해서 입거든요. 그래서 다들 몸을 숙여도 가슴이 보이지 않는, 새로 나온 스크럽이라는 흰 옷을 입어요. 그런데 그 간호사는 가슴이 보였대요. 실은 거기서 근무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예전 병원에서 입던 옷을 입고 다녔던 거죠. 숙이면 가슴이 보이는 그 옷을 입었던 단 한 명의 간호사는 바로, 시메노 씨. 시메노 가요코 씨. 이리 오세요.
시메노
(한숨을 쉬고) 억지 좀 그만 부려요.
네모리
저기, 지카스기 씨.
지카스기
만날… (고개를 크게 저으며)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아니, 안 해요, 죄송해요. 생각 안 해요…. 그런데 우연히 만나면 어떡하지, 싶어서.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떨군다)
네모리, 대화에 흥미를 잃고 화장실 쪽으로 향한다.
시메노, 그를 노려보며 아직 얘기 중인데 어딜 가냐는 의미로, 턱으로 지카스기를 가리킨다.
지카스기
한번, 딱 한 번 엽서를 보냈어요. 죄송해요.
네모리
엽서요? 어디로?
지카스기
책이요, 책에 적힌 주소로요.
네모리
아아, 출판사로.
지카스기
죄송해요. 이상한 거 보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