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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7

황정견시집주 7

황정견 (지은이),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옮긴이)
소명출판
3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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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7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황정견시집주 7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59059216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24-08-15

책 소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의 시 1,916수를 총망라한 『황정견시집주』를 완역한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황정견은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시론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사(山谷外集詩注卷第四)
1. 공정의 시에 차운하여 공정을 전송하다(次韻奉送公定)
2. 사공정의 「하삭만성」에 화운하다. 8수(和謝公定河朔漫成. 八首)
3. 사공정과 왕세필이 주고받은 절구에 차운하다(次韻謝公定王世弼贈答二絶句)
4. 공정과 세필이 함께 북도의 동루에 올라 지은 시에 차운하다. 4수(次韶公定世弼登北都東樓四首)
5. 사공정의 「남만을 정벌한 노래」에 화운하다(和謝公定征南謠)
6. 사후가 중추에 분사서도로 복관한 것을 읊은 시에 화운하다(和師厚秋半時復官分司西都)
7. 사후가 시골에 거처하며 마을의 제군에게 보여준 시에 화운하다(和師厚郊居示里中諸君)
8. 남양의 사 외숙에게 보내다(寄南陽謝外舅)
9. 외숙의 「숙흥」에 화운하다. 3수(和外舅夙興. 三首)
10. 사후가 황련교가 무너지고 큰 나무 또한 가을 벼락에 꺾인 것을 읊은 시에 화답하다(和答師厚黃連橋壞 大木亦爲秋雹所損)
11. 세필이 시를 보내와 순천을 구하니 문득 장안의 술로 함께 한 잔 마시고 싶어서 그 운에 차운하여 장난스레 답하다(世弼惠詩求舜泉 輒欲以長安酥共泛一盃次韻戲答)
12. 대합조개를 이명숙과 제공에게 보내주다(送蛤蜊與李明叔諸公)
13. 세필에게 앞 시의 운자를 써서 장난스레 시를 지어 보내다(戲贈世弼用前韻)
14. 세필이 약사들이 대합의 효과에 대해 좋게 논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시를 보내자 장난스레 답하다(世弼病方家不善論蛤蜊之功戲答)
15. 사후가 게를 먹고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師厚食蟹)
16. 사 외숙이 나귀 창자를 먹고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謝外舅食驢腸)
17. 사후가 마 저작랑에게 자주 준 시에 차운하다(次韻師厚答馬著作屢贈詩)
18. 자첨과 서요문이 저천에 눈과 안개가 일기를 바라며 창화한 시에 차운하다(次韻子瞻與舒堯文禱雪霧豬泉唱和)

산곡외집시주권제오(山谷外集詩注卷第五)
1. 박박주. 2장【서문을 함께 실다】(薄薄酒. 二章【并引】)
2. 언심에게 장난삼아 주다【원래 주에서 “이후의 자는 언심이다. 이후의 아우가 남양에 살고 있었다”라고 했다】(戲贈彦深【元注云, 李厚字彦深. 厚之弟居南陽】)
3. 죽헌에서 눈을 읊어 외삼촌 사사후에게 올리며 아울러 이언심을 놀리다(竹軒詠雪呈外舅謝師厚并調李彦深)
4. 『시경』의 “군자를 보지 못한지라 근심하는 마음 즐겁지 않네([未見君子憂心靡樂])”라는 여덟 글자로 팔운의 시를 지어 이사재에게 보내다(賦未見君子憂心靡樂八韻寄李師載)
5. 장 비교의 「희설」에 차운하다. 3수(次韻張秘校喜雪. 三首)
6. 인암의 시에 차운하다. 4수(次韻寅菴. 四首)
7. 『주역』의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同心之言其臭如蘭])”는 여덟 글자로 운자를 삼아 이자선에게 보내다(以同心之言其臭如蘭爲韻寄李子先)
8. 자첨이 찬(餐)자 운으로 세 사람에게 화답하였는데 네 번이나 시가 오고가면서도 조금도 어렵게 여기지 않고 더욱 힘차고 기이한 것을 보고서 곧바로 이전 운에 차운하여 팽문의 동파에게 보내다. 3수(見子瞻餐字韻詩和答三人四返不困而愈崛奇輒次舊韻寄彭門. 三首)
9. 자첨이 호주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화답하여 보내다(再和寄子贍聞得湖州)
10. 앞의 시에 차운하여 요민에게 답하다(次韻答堯民)
11. 봄놀이(春遊)
12. 「감춘」에 차운하다. 5수 (次韻感春五首)
13. 성간이 장차 위 땅에 우거하기 위해 제 땅에서 다니며 걸식하니 자못 가련한 행색을 지녔다. 이에 다시 「감춘」에 차운하여 주었다(聖柬將寓于衞 行乞食于齊 有可憐之色 再次韻感春五首贈之)

산곡외집시주권제육(山谷外集詩注卷第六)
1. 개 낭중이 곽 낭중을 이끌고 임무를 쉬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次韵蓋郎中率郭郎中休官. 二首)
2. 곽 우조의 시에 차운하다(次韻郭右曹)
3. 안문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는 양관을 보내며. 2수(送楊瓘雁門省親 二首)
4. 장 사하의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張沙河)
5. 제와 노 등 여러 지방을 유람하러 가는 장 사하를 전송하다(送張沙河遊齊魯諸邦)
6. 장 사하의 「초음(招飮)」에 화답하다(和張沙河招飮)
7. 요민과 함께 영원묘를 유람하였는데, 요헌신이 술을 장만하였다. 마(馬)와 릉(陵)자를 써서 시를 지었다(同堯民游靈源廟廖獻臣置酒用馬陵二字賦詩)
8. 「팔음가」를 지어 조요민에게 주다(八音歌贈晁堯民)
9. 다시 「팔음가」를 지어 조요민에게 주다(八音歌贈晁堯民)
10. 사후가 5월 16일 전원을 구경하고 이어서 이언심을 애도한 시에 차운하다【원주에서 “지난해 5월 13일 언심과 함께 서교에서 노닐었다”라고 했다】(次韻師厚五月十六日視田 悼李彥深【元註云, 去年五月十三日, 與之遊西郊】)
11. 조보지와 요정일이 주고 답한 시에 차운하다(次韻晁補之廖正一贈答詩)
12. 앞의 시에 다시 차운하여 요명략에게 올리다(再次韻呈廖明略)
13. 명략에게 급히 답하는데 마침 요민이 오기에 명략을 만나보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므로 작품 말미에 언급하였다(走答明略適堯民來相約奉謁故篇末及之)
14. 명략에게 답하고 아울러 무구에게 보내다(答明畧并寄無咎)
15. 다시 차운하여 명략에게 올리고 아울러 무구에게 보내다(再次韻呈明略并寄無咎)
16. 다시 명략에게 답하다. 2수(再答明略. 二首)
17. 무구와 염자상이 거문고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无咎閻子常攜琴入村)
18. 붕우를 맺는 시를 지었는데, 포조의 건제체를 본받아 조무구에게 드리다(定交詩二首效鮑明遠體呈晁無)
19. 무구에게 「팔음가」를 주다(贈無咎八音歌)
20. 「이십팔수가」를 지어 무구에게 이별하며 주다(二十八宿歌贈别無咎)

저자소개

황정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송 건립 85년 후인 인종 경력 5년 홍주부(洪州府) 분녕현[分寧縣, 현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슈수현(修水縣)] 수수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및 형제들은 진사에 오르기도 했고 또 북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운동가인 구양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또 부친 황서(黃庶)는 두보를 존경해 그 영향이 황정견에도 이어졌지만, 황정견이 열네 살 때 작고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자 그는 명망가인 큰 외삼촌 이상(李常)에게 의탁했다. 이후 구파의 손각(孫覺)의 딸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사별했고, 북경국자감교수(國子監敎授)로 있던 1072년 다시 사경초(謝景初)의 딸과 재혼했지만 역시 7년 후 사별했다. 두 번째 장인 사경초는 양주통판과 둔전랑을 지낸 관리여서 황정견은 그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064년 19세에 황정견은 중앙 정부의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한 번 낙방했다. 그리고 1067년 23세에 예부시에 다시 응시해 삼갑 진사제에 급제하고, 하남성 여주(汝州) 섭현위(葉縣尉)를 필두로 관직에 나섰다. 신종 희녕 5년(1072, 28세)에는 학관 고시에 합격해 국가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교수가 되었고, 북경에 있을 때인 원풍 원년(1078, 34세) 구파의 천재적 문인인 소식과 교유를 시작하면서 그와 줄곧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소문 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북송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80년 황정견의 정치적 후견인인 소식은 왕안석 신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왕안석 신파에 의해 ‘오대시안(烏臺詩案)’의 문자옥에 걸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고, 황정견 역시 길주 태화현(현 장시성 타이허)의 지사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는 도중 안휘성 서주 삼조산 산곡사(山谷寺) 석우동(石牛洞)의 경치에 반해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자호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파인 소식의 입각으로 이상, 손각, 소철(蘇轍), 황정견, 조보지(晁補之), 장뇌(張?), 진관(秦觀) 등이 수도 개봉(開封)에서 관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황정견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1085, 41세), 신종실록검토관(神宗實錄檢討官), 집현교리(集賢校理)(1086), 저작좌랑(著作佐郞)(1087)을 지내며 1091년까지 원우 연간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후 1093년 소식은 다시 좌천되어 광동성 혜주(惠州), 해남도(海南島) 등 장기 유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황정견 역시 사천성 검주(黔州)까지 쫓겨났다. 황정견은 1101년의 소식의 사후 정치적 박해 속에 유배를 다니다가, 1104년 봄에는 동정호를 지나 곳곳을 거쳐 여름에 의주(宜州)에 도착했고, 이듬해인 숭녕(崇寧) 4년(1105) 9월 30일 61세를 일기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다른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치열한 당쟁 속에서 풍랑을 겪어야만 했던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시사(詩詞)와 산문과 서예를 역사 속에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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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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