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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9

황정견시집주 9

황정견 (지은이),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옮긴이)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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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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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황정견시집주 9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59059230
· 쪽수 : 517쪽
· 출판일 : 2024-08-15

책 소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의 시 1,916수를 총망라한 『황정견시집주』를 완역한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황정견은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시론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십(山谷外集詩注卷第十)
1. 나가서 사신을 맞이하였는데, 사신이 새벽에 배를 띄워 떠나자 와요에서 돌아오다(出迎使客質明放船自瓦窑歸)
2. 공의보의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의보는 일찍이 길주의 수령을 지냈다】(次韻和答孔毅甫【毅甫嘗爲吉倅】)
3. 다시 이전 운자를 사용하여 공의보에게 보내다(再用舊韻寄孔毅甫)
4. 2월 2일 새벽에 여릉의 서제에서 만나는 꿈을 꾸고서 진적용에게 기별을 보내다【진적용의 이름은 여기로, 당시 여릉현령으로 있었다】(二月二日曉夢會於廬陵西齋作寄陳適用【適用名汝器, 時知廬】)
5. 진적용이 오남웅이 준 종이를 보내준 것에 대해 장구를 지어 사례하다(長句謝陳適用惠送吳南雄所贈紙)
6. 진적용에게 부치다(寄陳適用)
7. 회원옹에게 보내다(寄懐元翁)
8. 술을 마주하고 앞의 시 운자에 차운하여 회원옹에게 보내다(對酒次前韻寄懐元翁)
9. 후위가 길수에 갔는데 3일 내린 진흙탕 비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서 장난삼아 지어서 보내다(侯尉之吉水覆按未歸三日泥雨戲成寄之)
10. 후위의 집에서 비파 연주를 듣다(侯尉家聽琵琶)
11. 원주 수령 료헌경에게 보내다(寄袁守廖獻卿)
12. 원주 자사 요헌경이 차운하여 답하면서 아울러 황정국의 『재생전』을 보내왔는데, 그 시에 차운하여 보내다(廖袁州次韻見答并寄黄靖國再生傳次韻寄之)
13. 원주 유 사법도 또한 나의 ‘마(摩)’자 운의 시에 화답하니, 인하여 다시 차운하여 보내다(袁州劉司法亦和予摩字詩因次韻寄之)
14. 앞 시에 차운하여 길노에게 답하고 아울러 하군용에게 보내다(次韻奉答吉老并寄何君庸)
15. 원주 자사 요헌경의 「회구은」의 시에 차운하다(次韻奉答廖袁州懐舊隱之詩)
16. 군수 손승의에게 올리다(上權郡孫承議)
17. 손봉의의 시에 화운하여 채소를 보낸 것에 사례하다(奉和孫奉議謝送菜)
18. 손공선과 이중동이 금빛 앵이를 읊은 것에 화운하다. 2수 (和孫公善李仲同金櫻餌唱酬. 二首)
19. 여홍범에게 답하다. 2수(答余洪範. 二首)
20. 삼월 을사일에 만세향에 와서 소금세를 징수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은 집을 징수하는데, 그 집에서 늦게 밥을 먹다가 마침내 유숙하였다. 이날 바람에 세게 불어 버들(국화) 싹을 따서 국수에 넣어 먹었다. 2수(三月乙巳來賦鹽萬歲鄕 且蒐獮匿賦之家 晏飯此舍遂留宿 是日大自采菊苖薦湯餅. 二首)
21. 고군의 정적헌에 쓰다(題高君正適軒)
22. 이차옹에게 보내다(寄李次翁)
23. 4월 무신에 만세산에서 소금세를 부과하다가 우러러 외숙 사사후를 그리워하다(四月戊申賦鹽萬歲山中 仰懷外舅謝師厚)
24. 계축일에 조화도의 절간에서 유숙하다【임술년 4월 계축일부터 신유일까지 만세산과 금도갱에서 소금세를 거두면서 모두 열 편을 지었다】(癸丑宿早禾渡僧舍【壬戌四月癸丑至辛酉, 賦鹽萬嵗山及金刀坑凡十篇】)
25. 관산에서 유숙하다(宿觀山)
26. 대몽롱에 오르다【을묘년 새벽에 일어나다】(上大蒙籠【乙卯晨起】)
27. 노강에서 앞성으로 들어가다【을묘 식사 후에】(勞坑入前城【乙卯飯後】)
28. 을묘일에 청천사에서 묵다(乙卯宿淸泉寺)
29. 병진일에도 계속 청천사에 머물다(丙辰仍宿清泉寺)
30. 정사일에 보석사에서 묵다(丁巳宿寳石寺)

산곡외집시주권제십일(山谷外集詩注卷第十一)
1. 기미일에 태호의 사원을 지나다가 종여위의 편지와 산마로 만든 백주를 받고서 장편시를 읊어 화답시를 보내다(己未過太湖僧寺得宗汝爲書寄山蕷白酒長韻詩寄答)
2. 경신일에 관음원에서 묵다(庚申宿觀音院)
3. 신유일에 도갱구에서 쉬다(辛酉憇刀坑口)
4. 금도갱의 객관에서 추장갱의 10여 가구 산농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인하여 그 벽에 쓰다(金刀坑迎將家待追漿坑十餘戶山農不至因題其壁)
5. 한공의 「초칠형」에 차운하다(次韻漢公招七兄)
6. 안복 이 수령의 적헌을 읊어 보내다【안복현은 길주에 속한다】(寄題安福李令適軒【安福縣隸吉州】)
7. 안복 이령의 선춘각을 읊어 보내다(寄題安福李令先春閣)
8. 안복 이령의 애죽당을 읊어 보내다(寄題安福李令愛竹堂)
9. 안복 이령의 조화정을 읊다(題安福李令朝華亭)
10. 쾌각에 오르다(登快閣)
11. 이재보 선배의 「쾌각」에 화답하다. 5수(和李才甫先軰快閣. 五首)
12. 8월 14일 밤에 도갱구에서 달을 마주하고 왕자난과 왕자문, 그리고 진적용(陳適用)에게 보내다(八月十四日夜刀坑口對月奉寄王子難子聞適用)
13. 조피에서(彫陂)
14. 기복이 빈랑을 부치고 또한 답시를 보내와 나에게 같은 종류의 빈랑을 권하니 그 시에 차운하여 보내다(幾復寄檳榔且答詩勸予同種次韻寄之)
15. 황기복이 바닷길로 고맙게도 금물 30냥을 보내주면서 “이것은 덕이 있는 선비가 마땅히 복용하여 장차 음사를 물리치고 진화를 지켜야 하니 바라건대 평범한 약물로 건강을 기르지 말라”라고 하니, 장난스럽게 답하였다(黄幾復自海上寄惠金液三十兩 且曰此有德之士宜享 將以排蕩陰邪守衛眞火幸不以凡物畜之戲 答)
16. 기복에게 말하여 빈량을 요구하다(道復覓㯽榔)
17. 기복이 내가 준 세 물건에 대해 답한 시에 차운하다. 3수(韻幾復答予所贈三物. 三首)
18. 술을 보내 필 대부에게 주다(酒與畢大夫)
19. 태수 필이 조산대부로 벼슬에서 물러난 것을 기뻐하다(太守畢朝散致政)
20. 위도보(魏道輔)가 쌍령에서 보낸 삼첩시에 차운하다(次韻道輔雙嶺見寄三疊)
21. 장우직과 위도보의 증답시에 차운하다(次韻章禹直魏道輔贈答之詩)
22. 도보가 나그네 회포를 읊어 보낸 시에 차운하다(次韻道輔旅懷見寄)
23. 위도보의 「기회」에 화답하다. 10수(和答魏道輔寄懷. 十首)
24. 창고 뒤 주정청은 옛날 임부가 폄적되었을 때 지은 것이다. 11월 기묘일에 내가 가을 세금을 바치러 왔는데, 담장 너머 부용꽃이 만발하였다(倉後酒正㕔 昔日林夫謫官所作 十一月己卯 余納秋租隔牆芙蓉盛開)
25. 길노가 가을 세금을 걷기에 곧바로 장구를 짓다(吉老受秋租輙成長句)
26. 길노의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다(次韻和吉老)
27. 길노 자범을 초대하여 매화를 보다(招吉老子範觀梅花)
28. 자범이 순제향포를 맞이하여 군도를 쫓아내니 도둑이 거의 사라졌다. 이에 장구를 지어 여행의 노고를 위로하였다(範徼廵諸鄕捕 逐羣盗幾盡 輙作長句 勞苦行李)
29. 서은보가 여간의 수령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徐隱父宰餘干)

산곡외집시주권제십이(山谷外集詩注卷第十二)
1. 군용이 자운사에 우거하면서 소혜전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읊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君庸寓慈雲寺待韶惠錢不至)
2. 차운하여 도존 주부에게 받들어 답하다(次韻奉答存道主簿)
3. 시중에게 포단을 달라고 하다(從時中乞蒲團)
4. 동조옥연을 맡게 된 시중을 전송하다(奉送時中攝東曹獄掾)
5. 무형이 종이를 보내주면서 지은 장구에 받들어 화답하다(奉答茂衡惠紙長句)
6. 잡다한 말을 읊어 나무형에게 주다(雜言贈羅茂衡)
7. 조원충에게 보내다. 10수(寄晁元忠. 十首)
8. 조원충의 「서귀」에 차운하다. 10수(次韻晁元忠西歸. 十首)
9. 죽순을 먹다(食筍十韻)
10. 소손과 갈민수 두 학자가 나의 「식순시」에 화답하니, 그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蕭巽葛敏修二學子和予食筍詩次韻答之)
11. 호조청이 화운시를 보내오자 다시 그 시에 차운하다(胡朝請見和復次韻)
12. 입춘(立春)
13. 호조의 서신지에게 보내다(寄舒申之户曹)
14. 두중관의 시에 차운하다(次韻杜仲觀二絶)
15. 다시 두중관의 시에 차운하다(再次韻杜仲觀二絶)
16. 사일에 군용 주부에게 받들어 보내다(社日奉寄君庸主簿)
17. 왕주부의 집에서 도미화를 보다(觀王主簿家酴醿)
18. 도미화(酴醿)
19. 공사가 왕기옥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지은 장운에 내가 화답하여 보내었는데, 그 시를 보고 원옹이 좌중에서 다시 차운하였다. 인하여 내가 다시 그 시에 차운하면서 원옹을 이끌어 함께 지어서 분성으로 보내다(元翁坐中見次元寄到和孔四飲王䕫玉家長韻因次韻率元翁同作寄湓城)
20. 공사의 운에 다시 차운하여 화원옹 형제에게 보내고 아울러 의보에게 안부 삼아 묻다(再次孔四韻寄懷元翁兄弟幷致問毅甫)
21. 원옹이 왕기옥에게서 책을 빌리면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元翁從王䕫玉借書)
22. 원옹을 본받아 「여아포구시」를 짓다(學元翁作女兒浦口詩)
23. 지난해 원옹이 거듭 쌍간사에 가서 내 형제가 지은 시편을 보고 지은 시에 화답하였는데, 수록하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다가 병중에 기억하고 이 시를 짓다(去歲和元翁重到雙澗寺觀余兄弟題詩之篇總忘收錄病中記憶成此詩)
24. 주법조가 청원사에서 노닌 시에 차운하다(次韻周法曹遊靑原寺)
25. 증도조의 「희우」에 차운하다(次韻曾都曹喜雨)
26. 증처선의 위청에 장난스레 제하다. 2수(戲題曾處善尉廳 二首)
27. 상고의 이회도 공에게 부치다【상고는 균주에 속한다】(寄上高李令懷道【上高, 隸筠州】)

저자소개

황정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송 건립 85년 후인 인종 경력 5년 홍주부(洪州府) 분녕현[分寧縣, 현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슈수현(修水縣)] 수수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및 형제들은 진사에 오르기도 했고 또 북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운동가인 구양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또 부친 황서(黃庶)는 두보를 존경해 그 영향이 황정견에도 이어졌지만, 황정견이 열네 살 때 작고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자 그는 명망가인 큰 외삼촌 이상(李常)에게 의탁했다. 이후 구파의 손각(孫覺)의 딸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사별했고, 북경국자감교수(國子監敎授)로 있던 1072년 다시 사경초(謝景初)의 딸과 재혼했지만 역시 7년 후 사별했다. 두 번째 장인 사경초는 양주통판과 둔전랑을 지낸 관리여서 황정견은 그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064년 19세에 황정견은 중앙 정부의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한 번 낙방했다. 그리고 1067년 23세에 예부시에 다시 응시해 삼갑 진사제에 급제하고, 하남성 여주(汝州) 섭현위(葉縣尉)를 필두로 관직에 나섰다. 신종 희녕 5년(1072, 28세)에는 학관 고시에 합격해 국가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교수가 되었고, 북경에 있을 때인 원풍 원년(1078, 34세) 구파의 천재적 문인인 소식과 교유를 시작하면서 그와 줄곧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소문 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북송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80년 황정견의 정치적 후견인인 소식은 왕안석 신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왕안석 신파에 의해 ‘오대시안(烏臺詩案)’의 문자옥에 걸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고, 황정견 역시 길주 태화현(현 장시성 타이허)의 지사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는 도중 안휘성 서주 삼조산 산곡사(山谷寺) 석우동(石牛洞)의 경치에 반해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자호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파인 소식의 입각으로 이상, 손각, 소철(蘇轍), 황정견, 조보지(晁補之), 장뇌(張?), 진관(秦觀) 등이 수도 개봉(開封)에서 관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황정견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1085, 41세), 신종실록검토관(神宗實錄檢討官), 집현교리(集賢校理)(1086), 저작좌랑(著作佐郞)(1087)을 지내며 1091년까지 원우 연간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후 1093년 소식은 다시 좌천되어 광동성 혜주(惠州), 해남도(海南島) 등 장기 유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황정견 역시 사천성 검주(黔州)까지 쫓겨났다. 황정견은 1101년의 소식의 사후 정치적 박해 속에 유배를 다니다가, 1104년 봄에는 동정호를 지나 곳곳을 거쳐 여름에 의주(宜州)에 도착했고, 이듬해인 숭녕(崇寧) 4년(1105) 9월 30일 61세를 일기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다른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치열한 당쟁 속에서 풍랑을 겪어야만 했던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시사(詩詞)와 산문과 서예를 역사 속에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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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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