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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9098710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21-08-05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승아 학생뿐만 아니라 그 집 식구들이 타깃이 되었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점잖은 사람들이죠. 아, 한번은 그런 적이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의심한다거나 받을 만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 집 아들이 전화로 싸우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요. 살가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중한 편이었는데, 그날은 유독 표정도 안 좋고, 인사도 생략하고 가더군요.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내는 것 같았죠. 죽이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하고 그만 연락하라고.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별것 아닌 것도 중요하다고 하니까. 제 기억에 의하면 한 달 쯤 지났을 겁니다.
테러 경보가 3단계인 경계 단계까지 올라가긴 했었지만 808호 폭탄 사건이 원인은 아니었다. 행사 규모가 크든 작든 국제 행사가 개최될 경우 통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덕분에 사건 출동 역시 빨리 이루어졌다. 테러로 보이진 않는다는 게 경찰의 공식 발표였고 내부적으로도 테러가 아니라는 확신이 굳어지는 모양새였다. 추가 폭발도 없었을뿐더러 특정 단체의 동향도 파악이 끝난 듯했고, 사이버상에서도 수상쩍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인근 CCTV는 물론 교통카드 이용내역까지 살피고 있었지만 특이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준은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사제 폭탄이 흔한 사건도 아니거니와 벌어졌다고 해도 몇 시간 내에 끝났었다. 그러니까 뭐가 나와도 나왔어야 했다. 괜히 인터넷이나 뒤적거리고 있는데, 반장이 불쑥 옆으로 다가왔다.
“범인은 잡고 딴짓하는 거지?”
“무슨 딴짓이요?”
반장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이 형사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내 고과 깎아먹을 거 아니지? 믿는다?”
“진짜 테러 아닌 건 맞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줄 아는 거지. 싹 뒤져도 뭐가 없다잖아. 걔들이 좀 독하냐.”
“IS에 남파 간첩에, 종말론에 별별 헛소리 지껄이는 애들이 넘쳐나는데, 아닌지 맞는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인터넷에 떠도는 게 다 진짜면, 이 나라가 남아나길 하겠니? 그러니까 너도 발 빠르게 움직이란 말이야. 쟤네가 괜히 저러겠냐. 털 거 빨리 털고 가겠다는 거 아냐. 잘못하면 우리가 다 뒤집어쓴다.”
폭탄이 처음 터졌을 때도, 범인으로 몰리는 순간에도 아라는 착각했다. 불현듯 찾아온 사건이 오직 아라의 삶만 휘저을 거라고. 차마 내보이지 못한 수치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후, 허망하게 막을 내릴 거라고. 그러니 민낯이 드러난 순간에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폭탄이 다른 이의 민낯까지 고스란히 드러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 있으니,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소리샘으로 연결된 후….”
아라는 전화를 끊었다.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던 현이 급기야 핸드폰의 전원을 끈 것이다.
아라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뉴스로 접한 소식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전화를 걸었지만, 막상 받는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폭탄을 보내려 했었냐고? 죽기를 바란 거냐고? 오피스텔을 구한 게, 빚이 있다는 사실이, 협박을 받고 있었다는 날들이 폭탄과 무슨 상관이라고. 조금만 이성을 차리면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머릿속을 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