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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문화예술사
· ISBN : 9791159255274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0-04-10
책 소개
목차
글을 시작하며
1부 진경眞境과 진경眞景 그리고 산수화山水畵
진경眞景과 진경眞境
산수화山水畵와 수묵풍경화水墨風景畵
2부 표암豹菴 ‘진경眞景’을 말하다
〈소의문외망도성昭義門外望都城〉
〈도화동망인왕산桃花洞望仁王山〉
겸옹최득의필謙翁最得意筆
〈피금정披襟亭〉
〈정자연亭子淵〉
3부 〈인왕제색仁王霽色〉도와 사도세자의 비극
인왕산에 비가 그치니…
옹천瓮遷
〈시화환상간詩畫換相看〉
〈인왕제색仁王霽色〉
아! 〈인왕제색仁王霽色〉
청풍계淸風溪
4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설평기려雪坪騎驢〉
〈양천현아陽川縣衙〉
〈금성평사錦城平沙〉
〈종해평조宗海廳潮〉
〈목멱조돈木覓朝暾〉
〈소악후월小岳侯月〉
〈행호관어杏湖觀漁〉
글을 마치며
수록 도판 일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진경眞景’이란 말은 오늘날 미술사가들이 조선후기 문예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만들어낸 신조어가 아니다.
조선후기 문예계의 영수격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흔히 쓰던 ‘참 진眞’에 ‘지경 경境’자를 쓰는 ‘진경眞境’과 달리 ‘참 진眞’에 ‘빛 경景’자를 합한 ‘진경眞景’이란 말을 퍼트렸던 것인데… 오늘날과 달리 조선후기 문예인들에게 ‘진경眞景’이란 용어는 생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오늘날 흔히 ‘풍경 경景’으로 읽는 경景자가 당시에는 주로 ‘빛 경景’으로 읽었던 탓에 당시 사람이 ‘진경眞景’이라 쓰인 글귀를 읽게 되었다면 십중팔구 ‘참된 빛’이란 의미를 떠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암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 하였으니, 당시 글줄깨나 읽은 선비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뭐지?’ 하였을 것이다. ‘신선이 살고 있는 선계’를 뜻하는 ‘진경眞境’이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신선이 살고 있다는 선계처럼 빼어난 절경’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참된 빛의 산수화[眞景山水畵]’라 하였으니, 쉽게 개념이 잡히지 않는 신조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의 많은 미술사가들은 대체로 ‘진경眞景’과 ‘진경眞境’을 같은 뜻으로 읽고 있는 탓에 진경眞景 개념을 왜 세워야 하는지 그 필요성조차 실감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_ ‘글을 시작하며’
조선회화사에 겸재 정선만큼 큰 족적을 남긴 화가도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서인지 조선후기 문예의 특성을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통해 규정하고, 이를 ‘진경문화’ ‘진경시대’로 확산시키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조선후기 문화를 노론이 선도하였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겸재가 조선회화사에 등장한 것은 대표적 노론 강경파 장동 김씨 집안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하게 되면서였고, 이때 제작된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은 그의 금강산 그림의 원형이 되었으며, 이후 겸재는 평생토록 장동 김씨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전폭적 후원 아래 화업을 이어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사가들은 겸재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에서 ‘진경眞景’이란 말을 차용하여 조선후기 문화를 ‘진경문화眞景文化’라고 하면서도 한사코 겸재를 노론의 화가라 부르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사가들 스스로 ‘진경문화는 조선중화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란 주장을 펼쳐왔고, 그 중심에 겸재를 두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겸재를 노론의 화가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냉정히 생각해볼 일이다. _ ‘글을 시작하며’
‘동양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란 말은 당연히 진경산수화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아니 진경산수화는 그림으로 엮어낸 문장이라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 땅의 미술사가들은 진경산수화를 박물관에 모시는 일에 급급할 뿐, 그 대단한 진경산수화에 내포된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일엔 적극적으로 나서려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동양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 훈수 두던 학자들도 진경산수화를 읽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 탓에 큰맘 먹고 박물관을 찾은 관객들이 교과서에서 봤던 낯익은 진경산수화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오늘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_ ‘산수화와 수묵풍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