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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70873877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5-11-03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제주의 눈으로 본 제주의 역사
1. 변방의 시선으로 본 제주의 선사 문화
한국사 교과서에서 사라진 빌레못 동굴 | 1만 5,000년~6,800년 전의 사람 발자국 | 청동기와 철기 그리고 탐라
✣ 구석기 문화의 국적
2. 탐라의 형성과 건국신화
풍부한 신화를 간직한 제주 섬 | 장대한 여성, 설문대할망
삼성신화, 탐라 건국 이야기 | 바다로부터 온 3공주 | 삼성신화에서 삼을나신화로
✣ 고량부인가, 양고부인가
3. 고려와 몽골 그리고 탐라
고려에 복속되다 | ‘탐라’가 ‘제주’가 된 이유 | 삼별초의 마지막 격전지 | 제주 사람들에게 삼별초란? | 환해장성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 목호의 난
✣ 목호의 난과 고려 멸망
4. 몽골의 흥망과 함께 한 불교 문화
본존불 앞에서 굿판을 벌이다 | 본격적인 불교 전래 | “제주의 승도들은 공공연히 처를 취하여” | “지금은 사찰도 불상도 승려도 없다” | 제주 불교를 다시 일으킨 비구니
✣ 불교 전래 시기를 둘러싼 다양한 견해
5. 왜구의 잦은 침략과 군역
왜구의 길목 | 천미포왜란과 을묘왜변 | 군역 지는 여성들 | 제주의 방어시설, 3성 9진 25봉수 38연대 | 옹성, 해자, 치성, 여장
6. 변방 제주 섬과 조선의 양반들
조선 양반들에게 제주도는 무엇이었나 | 제주의 지방관
관아, 지방 정치의 중심지 | 유배의 섬 | 제주의 유배객들 | 제주의 다섯 현인?
✣ 조선 후기 강화되는 유교 교육
7. 제주의 칼바람이 완성한 추사체
제주인과 ‘육짓것’ | 제주 역사에서 외지인의 역할 | 추사체, made in 제주 | 기구한 운명의 천재 | 추사에서 완당으로 | 유배의 고통과 고독 | 추운 겨울이 지나야 푸르름을 알지니 | 완당과 초의선사
✣ 〈세한도〉의 유전(流傳)
8. 1만 8천 신들의 고향
쓰이지 않은 역사 | 미신인가, 전통문화인가 | 제주 무속신앙의 변천 | 신당과 당굿 | 당신 본풀이, 신의 내역을 노래하다 | 뱀을 섬기는 사람들 | 신화 속의 주인공은 여성 | 절집을 뛰쳐나온 미륵불 | 유교 근본주의 VS 민중 신앙 | 무속의 당굿과 유교식 포제
9. 민란의 시대, 제주의 이재수
변란으로 둔갑한 등소 모의 | 임술년의 제주민란
남학당과 방성칠의 난 | 새로 쓰는 이재수의 난
✣ 19세기 제주 민란의 특징
10. 일제강점기 제주인의 삶과 항쟁
코끼리 표 보온밥통 | 법정사 항일운동 | 제주도의 기미년 만세운동 | 신인회 결성 | 제주도의 공동체 전통과 아나키즘 운동 | 자주운항운동, 우리는 우리 배로! | 항일투쟁에서도 빛난 제주 여성의 힘 | 제주 야체이카의 붕괴 | 적색농민조합운동
✣ 교과서는 왜 항일운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가?
11. 전쟁의 회오리 앞에 선 제주의 운명
전쟁과 평화 | 천황주의가 강요한 죽음의 미학 | 결7호 작전, 본토방어를 위한 최전선 | 대동아전쟁인가, 태평양전쟁인가 | ‘평화의 섬’ 제주를 위하여
12. 한국 현대사의 비극, 4·3의 진상
현대사는 없다 | 미군정과 인민위원회 | 제주도 인민위원회 | 6만 인구의 귀환 | 4·3의 도화선, 1947년 3월 1일의 발포 | 민관 총파업과 미군정의 탄압 | 1948년 4월 3일의 소동 | 파탄 난 평화협상과 조작된 오라리 방화사건 | 정반대의 두 군인, 김익렬과 박진경 | 1948년 가을, 초토화 작전 | 끝나지 않은 비극 | 《순이 삼촌》에서 4·3 특별법까지
✣ 불완전한 해방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구멍무늬토기는 이후 제주도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 상모리에서 가까운 제주시 한림에서부터 차츰 제주시 곽지리로, 그러고는 제주시 용담동 무덤 유적의 남쪽 구역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다. 특히 용담동에서 이 구멍무늬토기 파편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용담동이야말로 탐라국 형성의 주 무대였기 때문이다. 결국 상모리 문화는 탐라국 형성의 한 뿌리이며, 그 문화는 현재 제주 사람들의 직접적 조상과도 어느 정도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거대한 권력자가 출현한 것 같지는 않다. 비록 한반도에서 청동기 문화인들이 유입되었음에도 큰 권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이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 중에 큰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 없다.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탐라국 시대에 와서야 제법 그럴싸한 고인돌들이 제작되었던 상황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1. 변방의 시선으로 본 제주의 선사 문화>
한반도와 다른 특이한 풍광만큼이나 제주 섬은 국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게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1만 8천 신들의 내력을 담은 제주의 여러 신화 가운데는 ‘천지왕본풀이’라고 하는 천지개벽 신화까지도 존재한다. 어둠과 혼돈만이 존재하던 태초에 하늘과 땅이 나누어져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이 천지왕본풀이는 큰 굿을 행하는 과정에서 굿의 서두인 초감제 때 심방(무당)들에 의해 불린다. 개벽신화를 간직한 지역은 제주도와 한반도 북부지방 일부를 제외하곤 국내에선 사실상 거의 없다. 세계적으로도 흔한 편은 아니다. 물론 이 책에선 우주의 탄생이 아닌, 제주도의 탄생 그리고 제주에 처음으로 건설된 탐라국의 탄생과 관련된 신화만을 살필 것이다. 주제를 제주 역사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2. 탐라의 형성과 건국신화>
목호의 난이 삼별초 전투보다 훨씬 오랜 시일을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삼별초와 목호의 주둔 기간을 비교해 보면 그 답이 나올 것 같다. 삼별초는 2년을 조금 넘게 주둔했지만, 목호는 약 100년이나 주둔했다. 몽골 사람들이 100년 동안 제주민들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 점은 목호 세력이 가진 ‘저항의 지지 기반’을 말해준다. 저항의 지지 기반이라? 이제부터 이야기가 좀 껄끄러워진다. 몽골의 젊은 군사가 제주도에 100년 동안 있었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겠는가? 기록에 따르면 1,400명 혹은 1,700명 정도의 몽골 군인들이 제주도에 들어와 있었다. 이들과 탐라 여자들 사이에서 자손들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3. 고려와 몽골 그리고 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