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59259623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25-09-15
책 소개
목차
제1장 왕명(王命)
1 하공진(河拱辰) 놀이 / 2 지키지 못한 왕명(王命) / 3 그때, 그들이 있었다 / 4 희소식 / 5 각자의 희망 / 6 각성 / 7 연등회 / 8 곡주에서 / 9 개경에서 / 10 구주에서 / 11 구사일생 / 12 용의 후손 / 13 학문과 덕행 / 14 늙은 여우 / 15 엎친 데 덮친 격 / 16 해적 / 17 서경의 황성 / 18 압록강을 넘어 / 19 왕명을 욕되게 할 수 없다 / 20 베 짜기 / 21 진병대장경 / 22 넘지 못한 압록강 / 23 지켜낸 왕명
제2장 용이 지키는 바다
24 청하현의 하늘바람 / 25 대비책 / 26 침입 / 27 형산강 전투 / 28 영일만 해전 / 29 연회
제3장 결정
30 군주의 행동 / 31 탄핵 / 32 결정
저자소개
책속에서
하공진이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열며 말했다.
“과거 염윤(서희)은 단독으로 거란 진중으로 들어가 나라의 위신을 지키고 거란군을 물러가게 했습니다. 소신이 비록 미력하여 염윤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으나 목숨을 걸고 공을 이루어보겠나이다!”
하공진은 과거 서희와 마찬가지로 거란 진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이었다. 왕순이 주저하며 말했다.
“염윤은 적절히 군대를 기동하여 적을 멈추어 세운 후에 협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너지고 말았소. 그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릅니다. 적의 기세가 맹렬한데 헛된 수고를 하여 충성스러운 신하만 잃게 될까 두렵소.”
‘충성스러운 신하’라는 말에 하공진의 가슴이 아려왔다. 하공진은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왕순은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공진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 하공진은 왕명을 받들어 이번에는 반드시 의리를 지킬 것입니다.”
왕순이 하공진과 신하들을 보며 굳건히 말했다.
“짐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소. 우리는 끝까지 거란군에 대항할 것이 오.”
하공진을 비롯한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왕명을 받드옵니다.”
하공진과 고영기는 왕순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후, 거란 진영으로 향했다. 창화현에 도착하자 벌써 거란군은 그곳에 와 있었다.
정월 초하루, 하공진과 고영기는 거란군의 호위를 받으며 개경에 들어갔다. 거기서 야율융서를 만났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곧 회군을 약속했다.
야율융서가 하공진과 고영기에게 말했다.
“짐이 군사를 보내 고려왕을 잡아들이고 싶으나, 그대들의 말을 들으니 이제는 고려 백성들을 어루만져야 할 때임을 알겠다. 군사를 거둘 것이니 그대들은 짐의 곁에서 도와야 할 것이다.”
하공진과 고영기가 크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분골쇄신하겠나이다.”_<그때, 그들이 있었다> 중에서
왕순은 본궐로 향했다. 십자가에서 북쪽으로 삼사 리 정도를 가면 본 궐의 동문인 광화문(廣化門)이었다. 십자로와 광화문 사이에는 시전(市廛, 상점) 거리가 있었고 사람들로 늘 북적댔다. 그런데 지금은 길 양쪽의 시전 건물들이 불에 타고 물에 쓸려 반쯤은 허물어져 있었다. 가옥을 우선순위로 복구했으므로 시전 건물들은 아직 손을 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왕순은 비로소 폐허가 된 개경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 대비해서 처참한 광경이었다. 광화문 바로 앞에는 길 양편으로 이 부와 병부 등의 관아가 위치하고 있었다. 시전 건물과 다르게 관아는 한창 수리 중이었다.
강감찬이 왕순에게 말했다.
“꼭 필요한 관아 건물을 우선적으로 수리하고 있습니다. 궁궐의 전각(殿閣) 중에서는 건덕전(乾德殿)을 수리 중입니다.”
왕순이 강감찬의 설명을 들으며 광화문 안으로 들어섰다. 광화문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중서성과 상서성, 추밀원 등의 관아들이 있는데 모두 불에 타서 흉물스럽게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근처의 어사대 등도 마찬가지였다.
삼백 보 정도를 걸어 궁성의 정문인 승평문 앞에 당도했다. 승평문의 문루는 처참히 무너져 있었고 불에 탄 문짝이 너덜거렸다. 화려했던 고려의 궁궐이 잿더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왕순은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소리 죽여 흐느꼈다.
며칠 후 왕순은 눈물을 한 번 더 흘려야 했다. 현덕왕후가 유산한 것이었다. 왕순은 현덕왕후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현덕왕후가 차분하게 말했다.
“옛날 원효대사께서는 ‘태어나고 죽는 것이 괴롭도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아이는 태어나지 못했으니 어쩌면 괴로움을 덜 겪은 것입니다.”
현덕왕후의 말에 왕순은 더욱 흐느꼈다. 왕순이 계속 흐느끼자, 현덕왕후가 조용히 게송(偈頌)을 읊조렸다._<개경에서> 중에서
해녀는 몽둥이를 들어 올린 해적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화살 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녀는 힘을 내어 엉금엉금 기어서 손녀를 붙잡고 손자 역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해적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것이 보였고 주위의 해적 몇 명 역시 털썩 주저앉았다. 나머지 해적들이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해녀는 아이 들을 품에 넣고 웅크리고 있었다.
“피잉-, 피잉-, 피잉….”
해녀의 몸 위쪽으로 화살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해녀는 두려움을 느꼈으나 자신들을 구하기 위한 화살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화살 소리에서 두려움과 더불어 안도감을 같이 느꼈다. 해녀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와 진동을 느꼈다. 그 진동에 이끌린 해녀는 고개를 살포시 들고 서쪽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연한 하늘빛이 해녀의 눈에 확 들어왔다. 하늘색 바람처럼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말을 타고 달려오던 그 남자가 해녀를 보았다. 해녀와 그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해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해녀의 안전을 살피는 듯했다. 해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괜찮다는 의사표시였다. 그 남자 역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해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녀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큰해졌다.
그때 품속의 손자가 머리를 힘차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두 팔을 높이 들며 외쳤다.
“와! 하늘바람이다! 하늘바람이 왔다아~!”
해녀는 그 사람의 옅은 미소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손자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병마판관 김종현이 해녀의 옆을 지나며 창을 빼어 들면서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다 쓸어버려!”
명령을 받은 좌우위 기병들이 외쳤다.
“좌우위! 성상을 위하여!”
해녀의 옆을 지나 좌우위 기병들이 해적들을 덮치고 있었다._<청하현의 하늘바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