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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59923975
· 쪽수 : 172쪽
책 소개
책속에서
지하 감옥과도 같은 프랑스 교육 시스템에는 진로를 조사하는 과정이 포함돼 있었다. 설문지에 ‘희망 직업’을 적으라는 문항이 있었는데, 나프나프는 ‘파라오의 수호자’, ‘수난을 겪는 브랜디 제조자’, ‘빙빙 돌며 춤추는 탁발승’같이 남다른 수사를 사용해 장래희망을 써냈다. 누군가가 그에게 나우펠Naoufel의 철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괴사Nerose의 N, 관절염Arthrit의 A, 다래끼Orgelet의 O, 두드러기Urticaire의 U, 누공Fistule의 F, 습진Eczea의 E, 나병(Lere)의 L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프랑스어 능력과는 무관하게 그는 점차 열등하고 무기력하고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날 저녁, 그는 사촌 여동생의 합법적인 감시자인 남편의 주소를 알아내려고 독사 하르픽을 다시 찾아갔다. 독사는 입술을 핥으며 새로운 소식들을 뱉어냈다. 나프나프는 독사의 이야기를 통해 피펫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압데라우프가 여동생에게 했던 ‘포주’ 행위와 순결을 강요한 아버지의 통제가 맞물려, 셰에라자드는 동네에서 ‘피펫’이란 매력적인 별명으로 불렸다. 독사 하르픽은 나우펠에게 그가 숭배하는 피펫에 대해 사실대로 얘기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이야기를 옮기며 아주 즐거워했다. 독사에 따르면, 순결한 오럴 섹스 아가씨라고도 불리는 피펫은 나우펠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며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다녔다. 어리석은 난쟁이 숫총각 나프나프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그녀의 미소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 아래쪽 벤치에 장갑 한 짝을 둔 채 깜빡 잊고 그냥 간 모양이었다. 나우펠은 한 시간 가까이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서 장갑이 눈에 덮여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버려진 장갑이 그의 눈앞에서 추억처럼 희미해졌다. 장갑과 눈 덮인 벤치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어지자 정원 전체가 사람의 흔적을 지워버린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눈이 그쳤다. 그는 사라진 장갑과 벤치를 한참 바라보았다. 달콤한 공기에 취한 기분이었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애써도 부모의 얼굴 또한 눈에 묻힌 장갑처럼 기억에서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다. 자신도 역시 언젠가는 여기에 없을 것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자신이 더 이상 풍경의 일부가 되지 않을 그날에 가까워졌다. 인생의 초고에서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면 눈처럼 하얀 페이지만 남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