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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60270075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7-02-10
책 소개
목차
11월
2월
5월
8월
9월
11월
2월
리뷰
책속에서
애인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다고 되풀이해봤자 별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모든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하고 모모는 의구심을 갖는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사바사키라면 그렇게 대답할 것 같았다.
1년여 전, 그야말로 맨몸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을 무렵, 이 집의 분위기 ? 카즈에 자신과도 비슷해서 꾸밈없고 소통이 잘되는 분위기 ─ 에 야마구치는 살 것 같았다. 자신의 인생에 이런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니, 라는 신선한 놀라움. 이곳이 나의 마지막 정착지다, 라는 감상을 야마구치는 즐겨 입 밖에 냈고(그 말을 듣는 것이 카즈에도 기쁜 눈치였다), 거기에는 약간 자학적인 기분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 가와사키 집에 비하면 이 오래된 집은 많이 보잘것없었기에 ─ , 그래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고, 후련하면서도 일종의 밝고 평온한 기분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했다. ‘내 인생에 이런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니’라는 신선한 놀라움은 ‘이런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주었다니’라는 신선한 기쁨과 동의어이며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조금 전 ─ 이란, 저녁 식사 때 ─ 히비키는 미쿠에게 심하게 화를 냈다(맏딸인 미쿠는 요즘 들어 부쩍 다루기가 어렵다). 음식을 전부 남겼기에 깨끗이 다 먹으라고 채근하자 미쿠는 살쪄서 싫다고 대답했다. 살찌면 좋지 않니─ 히비키의 그 말에 미쿠는 연극조로 한숨을 쉬고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더니, 우리 집 음식은 너무 기름지고 엄마는 요새 이중 턱이 됐다고 했다. 그때는 하야토가 미쿠를 나무라며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엄하게 지시해서 미쿠도 마지못해 따랐다. 하야토가 말한 ‘별것도 아닌 일’은 바로 그 일을 가리키는 거였다. 요컨대 그 후에 히비키가 한 말은 ─ 아빠를 타 넘으면 안 된다는 말도, 제대로 일어나 앉아서 TV를 봐달라는 말도 ─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히비키는 창문을 열고 밤공기와 비 냄새를 들이마신다. 혼자가 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화가 가라앉은 건 아니지만 화를 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우리 집 음식이 기름지다고? 훌륭하지 않니? 육체 노동자인 남편이 있고, 야만스러운 아이가 넷이나 되면 튀긴 음식만 오르는 날도 그야 있겠지. 이중 턱? 정말 고맙구나. 네 아빠는 부드러워서 안는 느낌이 좋은 여자를 좋아하거든? 남자는 대개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