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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0406313
· 쪽수 : 308쪽
책 소개
목차
비 · 7
남과 여 · 45
붕어빵을 든 여자 · 79
다섯 색깔 동그라미 · 106
멈춰버린 세월 · 137
홀로 우는 새 · 151
바람에 실려 · 176
외딴집 · 199
태풍 오던 날 · 238
혹독한 계절 · 251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눈앞에 있다 · 291
작가의 말 · 305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미 몸에서 뿔뿔이 뿜어져 나와 바닷물을 타고 흐르다가 아무 데고 저 몸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피웠다가 양식 줄에 촘촘히 묶여 살을 키운 홍합은 현장에서 솥에 푹 삶겨 뜨거운 맛을 보고는 벌러덩 벌어져 흐물흐물 고물고물하다가 껍데기와 떨어져 이렇듯 차가운 맛을 보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삶기고 씻긴 저것들은 밤새 꽁꽁 얼었다가 다음 날 낱개로 떨어져 박스 포장이 된 다음 다시 냉장실로 옮겨지고는 훗날 컨테이너에 실려 멀리 유럽으로 갈 터였다. 이름만 들어본 먼 외국으로 가는 것도 그렇지만 새끼 두셋 낳아 반평생 뒷바라지로 허덕이는 인간들에 비하면 어쩌면 저 알아서 흘러가고 저 알아서 크는 이것은 훨씬 더 고급스러운 생물일지도 몰랐다.
밤바다는 아름다웠다. 멀리 돌산대교 불빛은 수면을 타고 바로 눈앞까지 미끄러져 와 있다. 저 작은 불빛은 어둠을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모두 그 컴컴한 어둠 속에 묻히고 나서야 제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항만에 묶여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은 하루 동안의 노동을 끝낸 놈이나 여러 날째 마냥 쉬고 있는 놈이나 사이좋게 옆구리를 대고 잔물결에 출렁거리고 있다.
국동패같이 공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짐 지고 칼 드는 일을 젓가락 휘두르듯 하면서도 안 풀리는 집안 때문에 늘 인상을 찌푸리고, 신풍패같이 밭매고 집안일에 청춘을 바친 이들은 시부모 등불 아래 밥 짓고 빨래하는 봉건주의 생활 방식 덕에, 살다 보면 시엄씨 죽는 날 있겠지 하며 한숨 쉬며 사는데 근태네 얼굴에는 그게 없었다. 어떻게 보면 표정이 전혀 없는, 자질구레한 일상 따위는 초탈한 듯한 얼굴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삶에 지쳐 한시도 쉬지 않고 쓰린 표정을 짓고 있는 듯도 했다. 얼굴이 검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주변의 잔 기운에 섭쓸리지도 않는 행동거지가 그대로 올라가 붙은 형상이었다. 농담이 흔치 않아 입이 무거웠는데 그 입이 움직일 때가 바로 노래할 때와 먹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