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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60407457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4-01-20
책 소개
목차
조치원에서 꾸다
감자와 흰자위, 삔 팔, 족발
원초 같은, 갓 태어난 보드라움의 그것
부모은중, 그 두 겹의 절규
어…… 간…… 쥬…… 알……
조치원에서 어린 새[鳥]로 날다
에필로그_빗소리 와와 할 때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작가의 말
개정판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쳐서 객지 생활을 한 지난 10여 년, 어머니가 아파 귀향한 것은 처음이었다. 집 밖에 나가 일 없이 발목이나 팔이 삐어 돌아오는 게 부모가 늙어가는 증거라는데, 앞으로 이런 귀향이 더 드물잖게 될지 모른다. 어쩐지 그는 하룻밤 새 자신이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성장은 그의 내적인 것보다 부모의 늙음에서 오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돌연한 적개심에 휩싸였다.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걸어 병실 구석으로 패대기치고 싶었다. 아버지에 대한 오랜 동안의 감정이 이리 깊었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왜 우리 엄마를 괴롭힙니까! 엄마의 그 많은 병들이 다 당신 때문이 아닙니까? 무책임하게 낙태할 거면서 왜 여섯째까지 임신시켰습니까? 아니 우리 자식들 사이사이에도 낙태가 몇 번이었습니까? 왜 엄마 생리일 안 지켜주고 왜 콘돔 안 썼습니까? 엄마 자궁의 물혹도, 요강의 불그죽죽한 잦은 하혈도 다 그 때문이 아닙니까? 이렇게 많은 자식 낳게 한 아버지는 엄마한테 할 말 없어요. 엄마를 식모처럼, 애 낳는 기계처럼 부려먹고 살다가 언제부터 당신이 엄마를 이리 위했습니까? 결국 가사 노동력 때문이잖아요. 말년의 따뜻한 밥 맛난 고기 반찬 때문이잖아요. 눈이 멀어도 엄마가 머는 겁니다. 지금 누구보다 실의에 차 있는 사람을 왜 이리 사납게 몰아세웁니까? 그는 마음속을 휘젓는 분노로 주먹이 다 쥐어졌다.
무엇인가를 남기고 떠난다는 것, 사람의 죽음은 제 물질적 육체를 거두어 땅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 외 가져갈 수 없는 다른 모든 것들을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오늘은 서울을 떠나며 분홍색 팬티 한 장을 남겼지만, 머잖은 미래에 어머니가 서울이 아닌 이 지상 전체에서 훌쩍 자취를 감추며 이 한 장의 팬티와도 같이 사소하고 새록새록 저마다의 분명한 빛깔을 지닌 어머니 생애의 물건들을 남기게 된다. 어머니는 사라지고 없지만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빨래 방망이를 눈앞에 쳐들어보고 어머니의 낡은 텔레비전을 어루만지며 어머니의 흠집 많은 안경을 닦아보며 어머니가 즐겨 먹은 겨울초 나물무침을 먹어보며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를 그리워하며 울게 될 것이다. 어둠 속에 걸려 있는 어머니 팬티와의 적나라한 대면처럼 어머니의 모든 사물들은 사물 본래의 사소함을 뛰어넘어 자식들을 단숨에 어떤 무시무시한 인연의 비의로 이끌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