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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0543230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9-10-25
목차
프롤로그 / 그리고 길
이편 / 얘들이랑은 살아 백 년 했응께
동네 파마하는 날
선술집 아줌마와 유물론
위대한 유산
틀니
공출과 그리무
화장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노아의 방주
어머니의 씨앗
늙은 엄니가 자식 부부싸움을 대처하는 법 1 : 쥐똥나무 자르기
늙은 엄니가 자식 부부싸움을 대처하는 법 2 : 집행유예
박구서의 춘투(春鬪) 이야기
25년 전의 품
팥죽
젓국 끓이는 아침
국화동 느티나무의 광시곡
달나라 이발관
아직도 데모대를 보면 눈물이 난다
저편 / 너랑은 죽어 백 년 하자
전월사에서 허공의 달을 굴리다
다비장 가는 길
1916년생 신명희 여사, 이름을 바꾸다
단팥빵과 한 숟가락의 밥
망각과 기억 사이
니 누이의 남자를 오라 하면 안 될까
지금은 없어진 정거장에서 엄니를 추억하다
머릿기름
갈 까마귀 산 노인의 죽음
줌방골 삐삐
어머니의 벌초
희남아, 희남아 _ 작은딸을 위한 노제
간지럼 나무
에필로그 / 첫눈
저자소개
책속에서
1916년생이지만, 실제 엄니의 나이는 1919년생으로 이제 꼭 백수를 채우셨습니다
환갑 때 엄니를 본 사람들은 90세로 봤지만,
환갑 때 본 사람이 지금 보면 그냥 또 환갑으로 볼 정도로 정정하십니다
“얘, 애비야, 바꾸자!”
“뭘 바꿔?”
“이름 말이다. 내 이름 바꾸자!”
“아니, 그 이름으로 백 년을 사셨는데, 새삼스럽게 지금 와서 뭘 바꾼담?”
그러나 엄니의 단호함이 짐짓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내가 농담을 하면 항상 피식하시기만 했던 엄니가 모처럼 새봄의 새싹처럼 내 농담을 의연히 밀어냈습니다.
엄니가 겨우내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골몰했던 궁리의 끝이었습니다.
“인저 나도 죽어야것다!”
본래 엄니의 이름은 신소재였습니다. 그러나 신소제가 맞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데다가 한글을 모르는 엄니와 ‘ㅐ’나 ‘ㅔ’를 따질 겨를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은 신명희뿐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언니 한 분이 계셨었는데, 세 살 위였고, 그분의 이름이 본래 신명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태어나던 해 언니가 하찮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떴고, 외할아버지는 소재라고 부르던 어머니를 갑자기 명희라고 부르면서 언니의 호적을 그냥 가지고 살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 명희는 이미 죽었고, 소재는 아예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꼴이 돼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라대왕 명부에 돌아가신 명희가 남아있을 리 없다는 것입니다.
어쩐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몇 번이고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흰옷을 입은 아버지와 함께 나타나곤 했는데, 데리고 가려다가 지나치듯 그냥 엄니만 놔두고 홀연히 떠나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원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염치는 남아있는 아버지는 데리러 왔는데 저승사자가 명부에 없으니 그냥 갔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니가 이제는 이름을 찾아 염라대왕의 명부에 올려야겠다고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