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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60807578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우연
눈빛
떨리는 손
시험관계
할머니 미술반
고독한 열정
감춰진 상처
멈추지 않는 고통
새로운 시도
붉은 입술
일편단심
낯섦
변화
고향
나쁜 손
뒷모습
그림 사과 사건
빤스 하나 입히라
그때 그곳에서
호기심
공출된 어린 시절
악몽
잡동사니
박옥련 행님
만남
목욕하는 처녀들
끌려감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림이 된 고통들
마지막 수업
새가 된 강덕경 할머니
에필로그 늦게 핀 꽃
저자소개
책속에서
생각보다 밝은 할머니들의 첫인상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때까지 나는 상처가 깊은 사람은 항상 우울할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군 성노예라는 참혹한 일을 겪은 분들이라면 더욱더 그럴 거라고 상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민의 깊이는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해 고작 며칠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활자를 통해 접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삶을 혼자서 추측하며 마음껏 할머니들을 동정하고 염려했던 것이다. (중략) 나는 어정쩡한 태도로 나도 모르게 할머니들을 살피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신문에서 본 김학순 할머니의 눈빛 같은 강렬한 무언가를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모습은 김학순 할머니와는 사뭇 달랐다. 과거의 상처는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은 듯,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할머니들로 보였다.
―<눈빛> 중에서
“이 나이에 뭔 그림이여.” “늙어서 낼모레면 죽을 판에 이기 무슨 호사고.”
“치아라~ 머리 아프다.”
(중략) 나는 할머니들 앞에 놓인 미술용품을 보며 할머니들과 그림이라는 낯선 만남에 다시 한 번 신선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나와 달리, 할머니들의 표정은 창밖의 새침한 봄 날씨를 더 닮아 있었다. 미술용품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처음 갖게 된 물건에 대한 기쁨이나 호기심보다는 탐탁지 않은 마음을 감추지 않고 얼굴 표정에 드러냈다. 한마디로 모두 시큰둥했다.
―<떨리는 손> 중에서
오랜만에 대구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올라오셨다. 멋쟁이 할머니답게 고운 차림이었다. 할머니는 서울 나눔의 집에 올 때마다 미술 수업에 참여했다. 마침 심상 표현을 해보는 첫날이었다.
(중략) (이용수 할머니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무지개 색 타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면 왼쪽에 조금 작은 타원이, 오른쪽에는 조금 큰 타원이 그려졌다. 할머니는 붉은색 물감을 묻힌 붓으로 오른쪽 타원 위를 힘주어 꾹꾹꾹 찍었다. 다른 할머니들은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이 할머니가 붉은 점을 격하게 찍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왼쪽 타원 위에 ‘청춘’이라고 쓰고 그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 뜨더니, 그림 설명을 덧붙였다.
“왼쪽은 처녀 시절 내 깨끗한 모습이야. 어릴 적엔 참 곱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 이 오른쪽은 지금의 나인데, 상처를 많이입었어.” ―<붉은 입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