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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98159946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4-04-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용산 미군기지의 공간적 DNA
떠나기 전에│용산 미군기지 땅의 이해
한눈에 보는 용산 지도
1. 일본군 병영에서 미군기지까지 ‘용산기지 산책’
옛 일본군사령부 청사 정문 용산기지 14번 게이트
옛 일본군사령부 작전센터 사우스포스트 벙커
옛 용산 총독관저 터 미8군 121병원
용산의 중심축 미8군도로
옛 일본군사령관 관저 터 드래곤힐호텔
옛 일본군 용산위수감옥 미65의무여단본부
용산 미군기지의 배꼽 용산기지 1번 게이트
주한미군의 상징 공간 미8군사령부 일대
2. 철도와 군용지의 탄생 ‘한강대로 산책’
한강 최초의 교량 한강철교
한반도 철도망의 허브 용산역
일제의 철도공장 옛 철도정비창 부지
강제 징용의 아픔이 서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철길 따라 과거를 마주하는 백빈건널목
용산역 전면에 펼쳐진 옛 철도관사 단지
일제가 만든 최초의 공원 옛 용산철도공원
옛 용산철도병원 용산역사박물관
신용산의 탄생과 함께한 길 용리단길
3. 일제 상흔을 따라 ‘남산자락 산책’
아파트 단지가 된 옛 일본군 사격장
조선판 야스쿠니 신사 옛 경성호국신사
일본인을 위한 학교 옛 삼판소학교
조선은행 직원들의 집단주거지 옛 조선은행 사택지
일제강점기 근대식 고아원의 시작 옛 가마쿠라 보육원
최상의 환경을 가진 주거단지 옛 신세이다이 주택지
내선일체와 황민화정책의 온상 옛 조선신궁
4.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 ‘독립의지 산책’
청파로 아래로 흐르고 있는 만초천
용산의 청년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 역사울림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 효창공원
우리나라 여성 인재 육성의 선구자 숙명여자대학교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정신 식민지역사박물관
옛 경성연합군 포로수용소 신광여자중학교
5. 해방과 미군시대 ‘시대전환 산책’
용산 미군기지와 맞닿은 녹사평역
해방촌 입구에 위치한 용산기지 21번 게이트
피난민의 터전 해방촌
용산 미군기지 안의 한국부대 해병대사령부 부지
미군부대의 영향을 받은 길거리 문화 스테이크 골목
미군의 출입기지 캠프킴 부지
옛 육군본부 부지 전쟁기념관
미군에 의해 변화된 도시경관 삼각지 화랑거리
6. 지역문화와 외래문화의 공존 ‘마을부군 산책’
이태원 마을의 역사 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
다문화 거리의 중심 이태원
16개국 군대의 통솔 유엔사 부지
6.25전쟁 군수물자의 집결 수송부 부지
둔지미 마을의 마을 제당 둔지미 부군당
한강변의 또 다른 사당 동빙고 부군당
태조 이성계를 모시는 서빙고 부군당
조선시대 얼음창고 서빙고 터
7. 용산 개발과 미래 ‘이촌동 산책’
미군들의 생활 공간 사우스포스트
서울 근현대사의 상징 한강대교
용산공원의 관문 버들개문화공원
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 용산도시기억전시관
아파트 신도시 개발의 선두 동부이촌동
옛 일본군의 통신기지국 용산기지 13번 게이트
용산 미군기지 첫 반환부지 용산가족공원
국민을 처음 맞이한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
에필로그│‘공원도시’와 ‘사회적 자본’, 우리 사회의 숙제
부록
사진출처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고지 쟁탈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미군은 전방지역과 후방지역에 대한 재편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부지를 제공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은 1953년 10월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하여 우리나라는 주한미군이 주둔할 수 있는 공여지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기지 복구 및 건설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미8군사령부가 전방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미8군사령부 재배치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6·25전쟁으로 파괴되었던 일본군 병영시설 자리에 용산기지 복구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사실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인 1952년 9월 24일에 이미 용산기지 재건 프로젝트 1단계가 승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재건 작업이 곧바로 진행된 것이다.
미8군도로는 본래 후암동에서 신촌을 거쳐 동작진으로 이어지던 조선시대 옛길 위에 조성된 도로이다. 일제가 둔지산 일대에 병영을 건설하여 조선신궁, 후암동과 연결되면서 용산 병영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군용도로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둔지방마을이었던 신촌의 원주민들은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으며, 도로를 따라서는 ‘삼판정(三坂町, 미사카마치)’이라는 일본식 행정구역명이 붙여지게 되었다. 이 도로는 왕복 2차로임에도 폭이 넓은데, 초대 조선총독이자 육군대신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가 포병의 제일 큰 포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를 넓게 만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