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다노 브루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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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으로는 인격신, 성모 마리아 예배, 삼위일체 등을 부정하고, 천체론에서는 태양중심설을 제기하여 당시 절대적 권위를 누리던 가톨릭에 정면 도전함으로써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철학자이다. 1548년 나폴리 근처의 놀라에서 태어나 1565년에 도미니쿠스 교단에 입단하여 신학 공부를 하지만, 예수와 성모 마리아 예배에 대해 의심을 품는 비정통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교단과 갈등을 빚고, 1576년에 나폴리 교회에 의해 이단자로 고발되고 만다. 결국 브루노는 도미니쿠스 교단 및 가톨릭 교회를 떠나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제네바를 거쳐 프랑스 툴루즈로, 다시 파리로 간 브루노는 프랑스 왕 앙리 3세의 보호를 받으며 기억술에 관한 세 권의 책과 이탈리아어로 쓴 희극 『양초제조공』을 출판한다. 1583년에는 런던으로 가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며 교수직을 얻고자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저술활동에 몰두한다. 이때 그의 생애에서 가장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게 되는데, 1585년까지 런던에 머물면서 『성회 수요일 만찬』, 『원인과 원리와 일자』,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등을 포함한 6편의 대화록을 발표한다.
1591년 조반니 모체니고의 초청을 받아 베네치아로 간 브루노는 종교에 대한 거침없는 태도로 모체니고의 반발을 사 이단으로 고발되고 종교재판소에 의해 체포된다. 이후 로마로 인도된 그는 로마 교황청 감옥에 수감되어 7년 동안 재판을 받는다. 심문 과정에서 그가 삼위일체와 인격신을 반대하는 입장을 당당히 설명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자, 교황 클레멘스 8세는 브루노를 회개할 줄 모르는 완강한 이단자로 선고한다.
1600년 2월 8일 브루노는 캄포 데 피오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형당하고 만다. 브루노의 이론은 17세기의 과학, 철학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18세기 이후에는 많은 현대 철학자에게 받아들여졌다. 또한 그는 사상의 자유를 상징하며 19세기 유럽 자유주의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로, 서구사상사의 주요 인물이자 현대문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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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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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건국대학교 문과대학장, 부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며 중국 서북대학교 객좌교수로 있다. 일평생 대중들이 철학에 쉽게 다가서고, 어린이와 청소년 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조화롭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집필 활동을 펼쳐왔다.
저서로는『베르그송의 삶의 철학』『철학의 발견』『사회철학의 문제들』『니체, 해체의 모험』『헤겔, 절대정신과 변증법 비판』『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청소년을 위한 철학 에세이』『청소년을 위한 행복론 에세이』『청소년을 위한 정의론』『청소년을 위한 세계관 에세이』『철학으로 산다는 것』『철학의 오솔길』『강영계 교수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이야기』『쓸모 있는 지식이 참된 지식』『자연이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다』『철학의 기초』『죽음학 강의』『행복학 강의』『칸트를 알면 자유가 보인다』등이 있다. 역서로는 스피노자의『에티카』『신과 인간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짧은 논문』, 브루노의『무한자와 우주의 세계』, 쾨르너의『칸트의 비판철학』, 하버마스의『인식과 관심』, 베르그송의『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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