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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0871487
· 쪽수 : 223쪽
· 출판일 : 2025-10-25
목차
작가의 말
1. 표고목의 시간
망창
아버지 가방
표고목의 시간
소라게의 꿈
슬도에 들다
고화
마법의 순간
목공새
두꺼비의 선택
어부바
2. 천전리 엽서
숫눈
천전리 엽서
숨은 도둑
그의 배역
몸난감
바람
압화
귀가
다섯 평
갓털의 여행
3. 더블 캐스팅
겨울눈
답신
더블 캐스팅
경계에서
개목사 가는 길
답
나의 명의
춤
수락
4. 가을 편지
극이 끝나갈 때
채무를 기억하는 시간
방점
삼백재
외출
할미별
뒷배
마루
가을 편지
해설/끝없는 질문과 자기 성찰의 시간_배혜숙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선尾扇이란 이름이 붙은 나무 열매는 둥근 부채 모양이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열매에 붉은 물이 들면 그 모습이 어여뻐 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산기슭 산책로에 있던 미선나무를 고택 사내도 눈여겨봐 뒀을 것 같다. 그러다 슬쩍 눈맞춤했던 열매 형상을 안채 입구 판벽에 선물처럼 새기기로 했을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문양은 사내의 쑥스러운 고백일지 모른다.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다정한 마음이 사랑으로 둥둥 뜬 자리, 쿵쿵쿵 설레는 사내의 심장 소리가 환청인 듯 귀에 울린다.
내 나이 여든 중반이 되자 몸에 병이 깃들었다. 늘 건강했기에 쉬 회복되려니 낙관했다. 내가 병원을 찾던 날, 바로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될 때 간담이 서늘하더라. 급성 백혈병이 나를 벼랑으로 내몰았어. 네 오라비와 너, 그리고 막내가 장거리 병간호를 했지. 나날이 눈도 못 붙이고 지켜봐야 할 만큼 증상은 심해졌다. 너희들 고생 말이 아니었다. 주위의 환자들이 내게 그러더라. “얼마나 좋은 아비였으면 자식들이 저리 잘할까.”라고. 그때부터였을 거야. 내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 대학병원에 더는 있을 수 없었어. 의사가 나를 포기했으니까. 하지만 구급차에 실려 시골 병원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삶을 움켜잡고 싶었다. 집에 가면 병이 나을 것 같다고 고집부리기도 했지. 물론, 언제 쇼크 상태에 빠질지 몰라 허락되지 않는 바람이었다. 마침내 미뤄둔 숙제를 할 때라는 걸 예감했어.
방어진 섬 끝 마을로 간다. 집을 나설 때 먹장구름이 보이더니 바닷가에 도착할 즈음에는 작달비로 내린다. 방파제로 접어들자 바람까지 가세해 우산이 무용지물이다. 돌아설까 망설이면서도 발걸음은 앞으로 내닫는다. 섬과 연결된 다리를 지난다. 슬도瑟島다. 무인 등대를 나선형으로 휘감은 계단 아래에서 비를 피한다. 소리를 찾아 나선 길이 순탄치 않다. 부안의 슬도로 갔다. 전라도 여행을 할 때면 들르곤 하는 매창 쉼터다.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상석床石에 놓자 파란 하늘이 들어와 고였다. 절을 올렸다. 천 리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의 권주勸酒가 초라하지만 와서 한 잔 드시라 그녀를 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