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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4966234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5-12-29
책 소개
중년보다는 조금 더 무게가 기울어진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로 살기 시작한 지금. 책은 풍경, 사람, 사물, 공간 네 개의 장으로 나뉘지만 모든 이야기는 그 끝에서 인생으로 돌아온다.
칠십. 누군가는 이미 지나온 시간이고 누군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곳을 향해 걷고 있다. 이 책은 33년간 한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누군가의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살아온 시간을 넘긴 뒤에야 비로소 ‘나’의 시간을 맞은 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에서 풍경은 볼거리를 넘어 까맣게 잊고 있던 젊은 날이고 함께 늙어온 사람의 얼굴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펭귄 무리를 보며 문득 누군가의 첫걸음을 떠올리며 풍경은 언제나 과거로 이어지고 과거는 다시 지금의 나를 비춘다.
‘여행을 쓰려 했는데 결국 나를 쓰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 책의 본질이다. 궁전의 황금빛 방들 사이를 걸으며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일. 2천 년 전 유적 앞에서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 이국의 묘지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 이 책의 모든 풍경은 결국 삶으로 귀환한다. 세상을 보러 떠났지만 결국 마주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메시지가 이 책을 여행 에세이가 아닌 인생 에세이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출판사 리뷰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나’였던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어떤 풍경 앞에서 가슴이 뛰었나. 막막해진다.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러 떠나는 일이다. 젊은 날의 여행은 그랬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곳에 도장을 찍고 더 많은 사진을 남기는 일.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많이 봤는지가 여행의 성과였다.
그러나 나이 듦의 여행은 낯선 풍경 앞에서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멀리 갈수록 오히려 가까워지는 것이 있다. 바로 나.
호수 앞에 서면 까맣게 잊고 있던 스무 살이 떠오른다. 노을 앞에 서면 함께 늙어온 사람의 젊은 얼굴이 겹쳐진다.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올려다보며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도하는 뒷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풍경은 창문이다. 바깥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안을 비추는 창문. 그래서 같은 곳을 가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본다. 풍경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여행이 채우는 일이었다면 칠십의 여행은 비워내는 일이다. 더 많이 보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보려는 것.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남았는지 돌아보는 것.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지만 나이 들면 빛을 먼저 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다. 마음이 자란 것이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나이 듦이란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본질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듦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친다. 젊음을 잃는 것, 건강을 잃는 것, 자리를 잃는 것, 쓸모를 잃는 것. 나이 듦은 늘 상실의 언어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나이 듦은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존재로 돌아가는 일이다.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남았느냐를 묻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아직 칠십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책은 미리 건네는 풍경이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시간에 빛이 있다고, 오히려 그때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해주는 책.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자신의 여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구나, 누군가도 같은 풍경 앞에서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위로를 건네는 책. 그리고 지금 어딘가에서 역할의 무게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약속이다. 언젠가 ‘나’의 시간이 온다는 약속, 그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약속이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아흔여덟에 글을 세상에 내보였고, 모지스 할머니는 일흔여섯에 붓을 들어 백 살에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뒤늦은 시작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단순한 여행서였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전하고 싶은 것은 어디에서든 결국 나를 만나게 된다는 것. 풍경 앞에 서면 결국 내 인생이 비친다는 것. 여행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오래된 나 자신이라는 것.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칠십 여행』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다. 저자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될 보편적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남의 여행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내 여행을 미리 걸어보는 일이다. 혹은 이미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남을 것이다. 나는 언제 ‘나’로 떠날 것인가. 그 질문이 남는다면 이 책은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CHAPTER 1 - 풍경
1. 그날의 노을이 내게 말하려던 것 코타키나발루, 침묵하는 하늘 아래
2. 첫사랑처럼 간직한 마을 할슈타트, 시간이 멈춘 호숫가에서
3. 바다를 내려다본 날 그레이트 오션 로드, 끝없는 수평선과 마주하다
4. 깎이고 다듬어진 풍경처럼 내 삶도 그렇게 반들거렸다 게이랑에르와 송네피오르, 피오르의 시간
5. 리틀 펭귄이 가르쳐준 돌아가는 길 퍼핑빌리에서 필립 섬까지, 작은 생명이 건네는 위로
6. 가을의 나무들처럼 늦게야 비로소 내가 보인다 도쿄의 공원들, 단풍 아래 서다
7. 살아지는 삶을 보다 동유럽 마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
CHAPTER 2 - 사람
8. 문명의 흔적과 아이의 눈빛 사이에서 캄보디아, 찬란함과 가난이 공존하는 땅
9. 젊은 그녀와 늙은 나, 그 사이의 시간 삿포로의 청명한 하늘 아래
10. 김치 냄새와 손자 사진 사이 튀르키예 패키지, 시끄러운 사랑과 고요한 여행
11. 동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코펜하겐, 안데르센이 남긴 슬픔
12. 황금빛 감옥에서 이름을 잃은 여자들 쇤브룬 궁전, 가장 아름다운 새장
13. 윤동주를 찾아간 길 용정에서 교토까지, 이국의 흙에 누운 이름
14. 고독한 천재들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예술품이다 가우디와 미켈란젤로, 신을 향한 응시
CHAPTER 3 - 사물
15. 프라하의 시계, 고통이 깎아낸 아름다움 오를로이, 눈 먼 장인의 마지막 손길
16. 성당의 빛이 내게 말을 걸던 날 스테인드글라스,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
17.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앞에 서다
18. 천지 위에 피어오른 무지개 백두산, 언젠가 다시 만나자
19. 이름이 남지 않아도 화폐는 역사를 쓴다 한 장의 지폐가 말하는 시대의 얼굴
20. 비빔밥, 덮밥, 볶음밥 같은 곡식에서 다른 문화가 자라다
CHAPTER 4 - 공간
21. 에페스 공중화장실 터 유적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곳
22. 부엌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나에게 가까워진다 아궁이, 화로, 그리고 여자들의 자리
23.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성 슈테판 대성당의 카타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24. 공간은 영광을 기억하고 상처도 놓치지 않는다 만리장성에서 자금성까지, 돌과 흙 위를 살다간 이들
25. 온천, 여자들의 숨구멍 같은 공간 운젠과 사쿠라사쿠라, 따뜻한 물 속의 고요
26. 어둠 속에서 오래된 이야기들이 걸어나왔다 프라하의 밤, 조용한데 깊었던 도시
27. 40여 년 만에 현실이 된 상상 알람브라 궁전, 기억의 공간이 공간의 기억으로
에필로그
책속에서

젊은 날의 여행이 풍경을 수집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나를 비워내는 일이다. 시간이 나를 흘려보내는 줄 알았는데 실은 내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깨달음 같다.
이제 나는 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일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풍경의 안과 밖을 서성인다. 그 경계 위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배운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유 없이 눈가가 젖는다. 잊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안아주는 순간들이 있어서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