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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아닌 법 앞에서

법 아닌 법 앞에서

(4·3 법정 일기)

허영선 (지은이)
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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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아닌 법 앞에서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법 아닌 법 앞에서 (4·3 법정 일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2851852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6-03-16

책 소개

2021년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내란죄와 국가전복 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명 아래 70여 년을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이름들이 다시 호명된다. 《법 아닌 법 앞에서》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거나 행방불명되었던 이들이 재심을 통해 존엄을 회복하던 그 역사적 찰나를 시적 언어로 포착한 첫 시도이자, 진실을 향한 시의 첫 발걸음이다.
▶ 닫힌 법정의 문을 열고 터져 나온 진실, 시가 된 재심의 기록

오래도록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목소리들이 있다. 7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이 고통스러운 증언들은 2021년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시인은 이 역사적 재심의 현장을 지키며, 법 아닌 법 앞에서 눈도 입도 다물어야 했던 사람들의 피 맺힌 진술을 시적 언어로 치환했다. 이것은 사실의 나열을 넘어, 훼손된 존엄을 회복하려는 간절한 몸짓이다.

“그렇다면 내 죄는 무엇인가요?” / 법정을 울리는 소리 / 가슴 가운데로 날아와 못처럼 박혀 버렸다 / 당신이 내 곁에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 대신 진술하려 했던 것이다
〈이, 진술의 아침에〉 중에서

시인의 가슴에 못처럼 박힌 이 질문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통증이 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억울한 수형인들이 던지는 이 근원적인 물음 앞에, 시는 침묵 대신 가장 뜨거운 진술을 택한다.

▶ 숨비소리의 증언이 ‘획득으로서의 시’로 치환되는 순간

수백 건의 재심 사건을 맡았던 장찬수 부장판사는 이 시집을 향해 “아무도 몰랐던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내놓은 빛의 문장”이라 평한다. 그는 시인이 재판 현장을 빠짐없이 지켜보며 그들의 아픔과 함께했기에, 처음으로 4·3 법정을 다룬 생생한 증언시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시의 언어는 법정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재판장의 입을 빌려 뒤늦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재판장이 답합니다 / 아니죠 당신들은 어느 순간 당한 자들입니다 / (……) / 잘못된 과거를 이제야 바로 / 온전히 잡기 때문입니다 / 당신들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그 길까지는-재판장〉 중

이처럼 법과 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거기 꽃 피었습니까”라고 묻고 “여기 꽃 피젠 헴수다”라고 답하는 시인의 문장은 법정의 눈물을 역사의 기록으로 승격시킨다. 4·3의 수난을 평생의 사유로 삼아온 재일 시인 김시종 역시 이 지점에 주목한다. 그는 이 시집이 재심의 기록을 단순한 설명으로 끝내지 않고, ‘획득으로서의 시’라는 슬로건마저 언어 행위 안에 포함시켜 그 과정 전체를 독자 앞에 드러냈음에 주목한다.

▶ 70년의 영겁을 뚫고 날아오른 자유의 언어

시집의 끝에서 만나는 단호한 여섯 글자, “피고인 각 무죄!”라는 70년의 영겁을 지나 비로소 날아오른 영혼들을 향한 헌사다. 허영선의 시는 고정되지 않는 언어 감각으로 잔물결처럼 흐르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되돌린다. 민족과 역사라는 조건에 묶여 있으면서도 해방의 불꽃 속에서 쉽게 소진되는 것을 거부하며, 언어의 리듬과 이미지를 통해 독자가 지닌 해석의 편향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4·3 사건에 대한 끝나지 않는 기억과 찢겨진 존재들의 언어는 설명되거나 종결되지 않은 채, 사유의 깊이를 시간적 여운처럼 계속 떨리게 만든다. 이 시집은 단순한 이해의 대상을 넘어, 우리 안에서 계속 작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언어다. 바로 그 지점에서 허영선의 시업은 하나의 경이에 이른다.

▶ 역사적 복권과 생의 복원, 두 권으로 완성된 4·3의 입체적 지도

《법 아닌 법 앞에서》와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제주 4·3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법정’과 ‘삶의 현장’이라는 두 축으로 재구성한다.
《법 아닌 법 앞에서》가 국가 폭력에 의해 훼손된 명예와 존엄을 법적으로 복원하는 ‘증언의 기록’이라면,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존재들의 내면과 생명력을 응시하는 ‘생의 기록’이다. 두 시집은 민족과 역사라는 조건에 묶여 있으면서도,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리듬과 이미지를 통해 우리 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진실을 붙들고 있는 시의 진술이 어떻게 오늘날의 우리를 깊게 떨리게 하는지 증명해 낸다.

목차

5 시인의 말

제1부

14 법 앞에서
18 푸른 수인, 아버지 -수형인 명부
21 이, 진술의 아침에
23 우리는 누구입니까 -법정 일기
25 거기가 끝이 아니었음을 -주정공장에서
28 녹두를 따다가 -문창호
31 단전의 말 -김정열
34 딸에게
35 젖은 사랑의 부력 하나 -법정 일기
38 디아스포라 -이한진
40 유령의 법 -한빈 한성 형에게
43 감정 대리인 -캐롤린 리
45 한번 내란을 살아본 사람들은
47 거스로라는 말 -박화춘
50 사랑, 여기 이만치 누워
53 어느 부부 -법정 일기
56 어느 딸 -김정자
58 연좌제
60 어느 재판장이 말하기를
62 돌이킬 수 없는 반쪽 -수인번호 7246 김경인에게
64 70년 만의 답 -법정 일기
66 극점에 갔던 아이
68 눈물이 따라올까 봐 -순자에게
70 피고인의 그날
72 빌레못굴 비가
75 내란죄

제2부

78 수용소의 아기들
81 그럴 리가 없다
83 현만석, 희미한 어머니의 연기는 -법정 일기
85 자전거를 보면
87 그날, 201호 법정에서는
91 일본에서 왔습니다 -김방자
94 주정공장에서 -김을생
96 그날 이후 -고난향
97 멜죽
99 어멍은 유죄입니다
101 춘월이
103 사는 줄 죽는 줄 –고영자

제3부

106 모자 수인
108 모녀 수인
109 애도 받지 못한 소리들
110 어린 피난민을 위하여
113 법정에서
114 열한 살, 옥자
118 좁쌀죽 한 사발
120 봄밤이 멀어져 가도 당신은 응시하고
122 까마귀의 말
124 느랑 살앙 전해야 한다 -김인근
126 나 죽어 하늘 가면
128 눈오는 밤 검은 그물의 실을 잡고 –고춘자

제4부

132 너는 구덩이 안에 있고 -어느 생존자의 노래
136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네
138 찐빵, 작별 -박경생
140 수용소의 한 소녀가
142 소녀와 쥐와 고양이와
145 한 조각 -양천종, 광주에서 왔습니다
148 생존의 법칙
150 초승달 -정봉영
153 나의 첫 지붕 아래서 -김양언
155 저녁바다로 오세요
157 어린 죄책감 -법정 일기
159 돌아오지 않는 당신에게 -전찬순
162 한 늙은 어머니의 제문
165 행방불명인 묘역을 위한 비가
166 대전 골령골에서 돌아온 자가 말하기를
169 섬의 그곳에는
171 제주 바람을 온몸으로 듣다 보면
172 그 길까지는 –재판장

175 [에필로그] 법정에서 들었다
189 김시종(재일 시인) | 해명海鳴의 여운 같은 진동, 경악하며 읽었다

저자소개

허영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뿌리의 노래》 《해녀들》,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역사서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등이 있다. 제주4·3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김광협문학상을 수상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죄 없이 죄가 된, 법 아닌 법 앞의 사람들
모욕도 수치도 속수무책
법 아닌 법 앞에서
눈도 입도 다물던 사람들, 이제 한번
묻습니다 법 앞에서

거기 꽃 피었습니까

여기 꽃 피젠 헴수다
- <법 앞에서> 중에서


들었다
감추지 못한 발갛게 비틀린 얼굴
법정 문밖까지 멈추지 않던
갈라지고 찢어지는 숨비소리
그 마지막 한마디

헛헛한 그 말
70년 걸렸다

헛, 참
헛, 참
헛, 참
- <70년 만의 답-법정 일기> 중에서


지상에서 가장 길고 긴 하루의 법정
333인의 피고인 행렬이 이어졌다
죽은 이름들과 산 이름들
판사는 같은 성씨에
기역과 기역, 니은과 니은 같은
항렬의 이름들을 일일이 호명하였다
- <그날, 201호 법정에서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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