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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3647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20-07-24
책 소개
목차
#에필로그
(2부)
#프롤로그
#1. 로지
#2. 태평
#3. 그림
#4. 전시회
저자소개
책속에서
“드디어 만났네요, 우리.”
낮고 깨끗한 목소리로 건넨 남자의 인사에 로지의 눈은 그의 어깨 위로 향했다. 빳빳하게 날이 서 있는 셔츠에 감싸인 탄탄한 목이 보였다. 고개를 조금 더 들어 남자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
남자의 눈과 마주친 순간 로지의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잔뜩 경직된 로지의 표정과 달리 남자의 입매는 슬쩍 풀렸다.
“오랜만이에요. 오로지 선배님.”
가느다랗게 찢어진 눈이 나붓하게 접혔다. 로지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믿을 수가 없었다. 태평이 지금 제 눈앞에 서 있는 것도, 그가 티끌 한 점 없이 맑게 웃고 있는 것도.
“……태평.”
입가에 맴돌던 이름이 기어코 튀어나왔다.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태평은 허리를 숙이고 그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바람에 축축한 그의 숨결이 로지의 코와 입술 위로 가볍게 흩어졌다. 입술이 닿은 것도 아닌데, 로지는 온몸이 긴장으로 굳는 걸 느꼈다.
“이제 내가 보여요?”
“…….”
“다행이네요. 이제라도 알아봐서.”
피식 웃는 태평의 등 뒤로 한기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가 열어 놓은 창문 탓인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에 태평은 잇새로 혀를 차며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왜…….”
여기에 온 거냐고 물으려던 목소리가 어깨를 감싼 코트에 의해 삼켜졌다. 고개를 떨군 로지는 망토처럼 걸쳐진 옷을 바라봤다. 태평의 무릎 위를 덮고 있던 코트가 제게는 발목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다. 그의 옷을 걸친 로지가 흡족했는지 태평이 느른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흠칫 놀라 코트를 벗으려던 순간이었다.
“그냥 입고 있어요.”
태평이 경고하듯 쏘아붙였다. 말로는 부족했는지 퍼렇게 힘줄이 돋은 손이 코트 쪽으로 다가왔다. 마디가 굵고 긴 손가락으로 코트의 단추를 채운 태평은 마지막으로 코트 깃도 바짝 세웠다. 훈훈한 온기를 품은 옷과 달리, 싸늘한 음성이 로지의 귓가를 스쳤다.
“이번에도 버리면 용서 안 할 테니까.”
로지는 태평을 멍하니 바라봤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옷도, 이 꽃도.”
커튼 속에 숨겨 두었던 꽃다발을 꺼낸 태평은 그걸 로지에게 안겼다. 피처럼 붉은 장미꽃을 떠안게 된 로지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게 사라져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하지만 그 소원은 얼굴에 닿는 뜨거운 체온에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볼을 건드리는 손끝에 놀란 로지가 감았던 눈을 떴다. 태평은 로지의 얼굴을 만졌던 손으로 자신의 뺨을 문지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는 걸, 그도 확인해야겠다는 것처럼. 착잡함이 묻어 있던 태평의 얼굴에 희미한 열기가 오르더니, 그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리고 나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입고 있는 옷에서 꽃향기보다 더 뚜렷한 체향과 차디찬 향수 냄새가 섞여서 났다. 어렸을 적의 태평에게서 맡아 보지 못했던 그 쌉싸름한 향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