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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4835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21-05-03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흔들어 줄까?
너 되게 잘해, 걱정 마
길들여지는 것
열정이 온도를 달리했다
그러니까 전부였다
0220
외전 1
외전 2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 새카맣다.
혈기왕성 대신 취기왕성 했던 대학 새내기 그 방종한 시절 이후로 단 한 번도 필름 끊겨 본 적 없는데. 실로 오랜만에 겪은 블랙아웃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했다.
이렇게 완벽히 지워지다니. 하룻밤이라는 긴 시간이 통째로 말이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나, 약을 탄 술을 마셨다던가 하는 못된 짓을 당한 건 아닐까!
그러나 곧 그 못된 짓을 한 것이 다름 아닌 자신임을 떠올리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감기 기운을 초장에 잡길 강권하는 직장 동료 민환 때문에 두 시간 단위로 두 차례나 종합 감기약을 삼킨 것은 분명 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독한 약을 먹고 만취해 버린 주제에 기억이 남아 있길 바라다니.
우매하다, 우매해.
지현은 상체를 일으키던 기세 그대로 머리통을 매트리스에 푹 박아 버렸다. 접시 물에도 코 박고 죽을 수 있듯이, 이대로 얼굴을 묻은 채로 유명을 달리할 수 있지 않을까. 솟구치는 들숨의 욕구를 모른 척 억누르고, 폭신한 이불에 소리 없는 악을 써 남은 숨까지 뱉어 냈다.
죽자. 죽어 버리자.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전, 지현은 벌떡 상체를 세웠다.
이 진부하고, 식상한 아침 장면에 뭔가 어색한 것이 하나 있지 않은가. 섹스의 기운이 완연한 이 침대 위에 딱 하나 빠진 것이 있다.
그렇다, 남자! 귀신이랑 일을 친 게 아니라면 응당 옆자리에 누워 있어야 하거늘!
“……나, 누구랑 잤니.”
누구냐, 너!
지현은 그러나 드넓은 호텔 방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절망해야 했다. 섹스 한 남자의 얼굴도 기억할 수 없다니. 오늘 아침 일어난 일 중 그나마 가장 덜 진부한 부분에 일종의 위안을 느낄 새도 없이 지현은 다시 머리통을 매트리스에 박고 자진 원산폭격을 수행했다.
“죽어, 죽어!”
아아악!
메마른 입안에 담요를 욱여넣던 지현은 다시 고개를 벌떡 들어 올렸다.
“아니지? 서,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그치?”
스멀스멀 난삽한 몇몇 장면이 이마를 때리는 가운데, 전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부, 회사에서 봐.’
벗은 어깨에 입을 맞추던 남자. 푹 잠긴 잠 속에서 웅얼웅얼 지현이 대답했었다.
‘으응…….’
아아! 다시 한번 안면을 후려치는 이 진부한 전개를 보라.
차라리 낯모르는 뭇 남성과의 원 나잇이기를 빌었던 찰나의 기원은 무참히 구겨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부지현?
너는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낯익은 직장 동료 누군가와 사고를 쳤구나. 도대체 얼마나 취하면 인지와 사고 능력을 내버리고 일을 칠 수 있는 걸까.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지현은 굳어서 삐거덕 소리가 나는 사지를 움직여 운동장만 한 침대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