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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160724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9장 내명부
10장 오향재
11장 그날들
12장 사냥
13장 후궁실록
저자소개
책속에서
재서는 글월비자의 손에서 낚아챈 서신을 한눈에 훑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은애당을 바라보았다.
“네가 미쳤구나? 등 따습고 배불러 기어이 미쳐버린 것이야, 그렇지?”
재서가 한 발 다가왔다. 코앞에 바짝 다가선 재서가 개똥이를 대하듯 비웃으며 낮게 속삭였다.
“아씨, 제가 분수도 모르고 언감생심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을 품었나이다.”
“독을 품었구나. 저를 죽이는 독인 줄도 모르고 품었구나. 사랑이 그런 거라더라. 사람 미치게 하는 거라고. 제 손으로 무덤 파는 거라고. 혼자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겠어. 불쌍해서 어쩔꼬?”
“아씨, 아니…… 마마. 마마,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그저 저 혼자……. 그분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시는데 그저 저 혼자…….”
재서가 한 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섰다. 개똥이는 다시 은애당이 되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원은 빛 속으로 걸어 나왔다.
연홍 앞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불빛을 등지고 선 원이었다. 연홍은 꿈인가 싶었다.
“말해보라.”
아, 꿈이 아니다. 저하가 오시었구나. 여태 꿋꿋하게 버티던 연홍은 순간 힘이 툭 풀렸다.
그가 제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졌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바짝 서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시야가 흐려졌다. 눈가에 차오른 눈물 때문인가. 흐린 눈 속에서, 모든 것이 흐릿했지만 오직 저하만은 또렷했다.
원은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더 나아가 겉옷을 벗어 연홍을 감싸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냉정해야 했다.
“내게만 고하겠다는 말, 무엇이냐. 말해보라.”
원이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연홍이 원의 눈빛을 읽고자 한참을 바라보았다. 전례 없이 차갑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냉기 가득한 목소리에 연홍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곧 침착한 눈빛으로 원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