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3164883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1. 청춘의 일
2. 92년생 구운몽
3. 포지션
4. 옥탑방 빌런
5. 그래도 되는 사이
6. 브런치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8. 괜찮냐고 묻지 않았어
9. 커튼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질문을 바꿔봐.”
“네?”
“과거에서, 미래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 말고 지금 답이 나오는 질문으로.”
누구에게나 우문오답(愚問誤答)의 시절이 있다. 어리석은 질문 끝에 나오는 오답.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가 자기 비하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질문을 바꾸라는 거였다.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하라고. 할 수 있는 게 뭐라도 있을 거라고, 그걸 하면 된다고.
운몽은 지난 밤 달빛 고고하던 옥상에서 지혜의 노인이라도 만나고 온 기분이 들었다. 강서가 존경스러워졌다. 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장 선배였다. 선배된 도리로 희동이네 치킨 가게에서 닭이라도 팔아줘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어제 마신 와인이 훅 올라왔다. 코끝에 알코올 향만 스쳐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운몽은 장 선배와의 만남을 일주일 뒤로 미루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설거지였다.
현관문을 열자 웬 낯선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순간, 운몽은 남의 집에 들어왔나 싶었다. 아이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까 봐 운몽은 상냥함을 짜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니?”
“엄마아!”
아이는 대답 대신 2층으로 쪼르르 올라가버렸다. 곧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강서가 보였다. 운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귓가에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운몽의 머리통이 보신각 종이 된 것 같았다. 뒤통수를 때리는 타종봉의 충격파가 고스란히 전달된 심장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강도로 거칠게 쿵쾅거렸다.
그러고 보니 운몽은 강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헤드헌터이고 재영의 친구이며 운몽이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흑역사에 등장한 적 있는 예쁜 누나라는 것, 재혼한 어머니가 새 아버지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바람에 초록 대문집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것 외에는.
엿새 만에 집으로 돌아온 강서는 아는 누님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 운몽 앞에 서 있었다.
“연우야, 인사해. 엄마가 말했던 운몽 삼촌이야. 앞으로 우리
랑 같이 살 거야.”
“안녕하세요? 운몽 삼촌. 난 연우예요.”
아이가 똘망똘망하게 이름을 말하고 공손하게 배꼽 손 인사를 했다.
어쩌면 환골탈태한 것은 초록 대문집이 아니라, 운몽 자신이란 생각에 감사의 마음이 절로 솟구친다. 우찬희 덕분에 청년 주부라는 명함을 갖게 되고, 우찬희 덕분에 주부의 일상을 체험하며 그 숭고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운몽에게 확실하게 장착된 주부의 눈, 주부의 손, 주부의 마음은 앞으로 운몽 앞에 펼쳐질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마다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 우찬희의 오토바이를 빨리 팔고 초코파이를 사가지고 면회를 가야겠다.
형, 고마워.
운몽은 허공에 대고 작게 옹알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