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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한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91163162001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21-09-10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사고 당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자가 받아들이는 덴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이 받은 충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앉은 채로 마주 보기만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한 대리석 조각상처럼 보였다.
눈과 눈 사이, 콧대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시작해 시원하게 뻗은 콧대의 끝까지, 그리고 옆으로가 아니라 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귀족적인 광대뼈에 귀를 타고 내려가는 우아하게 각이 진 턱선까지, 모든 뼈대가 반듯하면서도 입체적이었다. 핏기가 가신 도자기 같은 흰 피부가 그 느낌을 더욱 강조해주었다. 넋을 놓고 보고 있자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말이 불쑥 생각났다.
잘생겼다. 누군가 미의 기준에 대한 측정값을 가지고 디자인해놓은 것처럼.
본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기억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눈앞에 보이는 걸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모르는 천재후의 모습들. 그래서일까, 그것들을 읽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낸 영화 속 캐릭터의 일대기를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대체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었을까.
재벌가의 후계자에 관한 이렇게 은밀하고 개인적인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낸 거지?
‘이건…… 나 혼자 한 게 아니야.’
확신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고 나서 나는 최 비서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죠?”
그가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올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더 있는 거죠? 천재후 씨에 대한 뒷조사를 도와준 사람.”
“기억은 사라졌지만 눈치는 여전히 빠르군요. 맞습니다. 공범이 있었죠, 당신한테.”
“누군가요, 그게?”
그가 눈썹을 살짝 까딱였다.
“첫 번째 서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