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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3165125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3-12-15
책 소개
목차
#1 열등감과 위버멘시, 은휘
#2 아라한과 수보리 그리고 세존
#3 탐욕과 진인사대천명, 금희
#4 정우와 준혁
#5 오만과 저울, 주연
#6 현시욕과 결점두, 원우
#7 용서, 지민
#8 사람과 인연의 매듭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남자가 뭔가를 쑥 내밀었다. 연꽃 장식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황금색 버튼이었다. 살짝 조잡스러운 금빛은 관광지 기념품숍마다 진열된 싸구려 불상의 것과 닮아 있었다. 엉뚱한 개량한복과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았다. 한결 더 괴상해진 남자의 모습에 은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버튼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볼레로?”
한눈에 보아도 교양과는 담쌓고 지낼 법한 광인인데, 그가 선곡한 음악이 라벨의 볼레로임이 의아했다. 절에서 볼 법한 색감의 버튼, 개량한복, 차라리 불경이 나오는 게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안 어울리는 것들로 치장하는 취미가 있는 걸까, 은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버튼이 뭔데요?”
“재미있는 버튼이지. 누군가에게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을 가져다준다. 눌러보지 않겠느냐?”
“뭘 그리 놀라. 금희가 이렇게 되길 바랐잖아.”
아니었다. 금희를 미워했지만 이런 불행을 바라진 않았다. 이건 자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해줄 결과가 아니었다. 은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근데 있잖아.”
나경이 은휘의 귀 언저리까지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곤 속삭였다.
“레스토랑에서 말해줬던 버튼 이야기 진짜였나 보네. 네가 눌러서 이렇게 된 거야?”
절대 아니었다. 이건 절대 아니어야만 했다. 은휘가 강하게 고개를 휘저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변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일제히 은휘를 쳐다보았다. 수많은 눈동자들과 마주친 은휘는 티가 날 정도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난 모르는 일이고, 상관도 없다고. 전세사기를 자신이 친 것도 아니라고.
아라한은 달빛의 호위를 받았고, 밤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 모습은 신비로웠다. 금희는 불안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면서 홀리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괴롭힌 상대에게 누군가 대신 불행을 안겨준다면?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돈을 잃게 하는 불행을? 금희는 손이 점점 간질거렸다.
아라한의 머리칼 끝에 매달린 작은 빛 조각의 움직임을 보며 금희는 떠올렸다. 인생이 극이라면 자신의 삶은 분명 희극이라는 믿음을. 그리고 진인사대천명, 해야 할 일을 마친 사람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운명이 찾아와야 했다. 하늘이 돕고 있는 요즘이었다. 아라한의 말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버튼을 누르는 행위 자체로 손해 볼 건 없었다. 금희는 마음에 숨겨둔 사람을 떠올렸다. 가증스럽고, 밉고, 짜증 나는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