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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64455263
· 쪽수 : 176쪽
책 소개
목차
서문
첫 번째 수기
두 번째 수기
세 번째 수기
후기
작품 해설 | 절망과 절규 속에서 피어난 인간에 대한 희망의 빛
작가 연보
책속에서
외롭다.
여자들의 천 마디 신세 한탄보다 그 한마디 중얼거림에 저는 공감할 것 같은데, 이 세상 여자들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끝내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괴하고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녀는 입으로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대신 지독한 외로움을 몸 외곽에 한 치 폭의 기류처럼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곁에 다가가면 제 몸도 그 기류에 휩싸여, 제가 가진 뾰족뾰족 가시 돋친 음울함의 기류와 잘 녹아들었습니다. 저는 ‘물속 바닥 바위에 달라붙은 말라죽은 가랑잎’ 같은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핵 요양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저는 젊은 의사의 심히 나긋나긋하고 정중한 진찰을 받았습니다.
“뭐, 한동안 여기서 요양을 하시죠.”
의사는 꼭 수줍은 것처럼 웃으며 말했고, 넙치와 호리키와 요시코는 저를 남겨두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요시코는 갈아입을 옷가지가 든 보따리를 제게 준 다음 말없이 허리띠 안에서 주사기와 남아 있던 그 약을 꺼냈습니다. 역시 정력제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니야, 이제 필요 없어.”
정말 드문 일이었습니다. 누가 권하는 것을 거부한 일은 그때까지 제 인생에서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제 불행은 거부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거부하면 상대의 마음에나 제 마음에나 영원히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골이 생길 것 같은 공포심에 떨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반미치광이가 되어 그토록 원하던 모르핀을 아주 자연스럽게 거부했습니다. 요시코의, 말하자면 ‘신(神)과도 같은 무지’에 감동받았던 걸까요. 저는 그 순간 이미 중독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뒤 곧바로 그 수줍게 웃는 젊은 의사의 안내에 따라 한 병동에 들어갔고, 철커덩하며 자물쇠가 채워졌습니다. 정신병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