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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5120368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1-10-28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소설쓰기는 두 번째 삶 · 4
아내의 반전 · 9
은근한 낭만 · 27
삶이란, 우주의 룰렛 · 45
당위가 아니라 신념일 뿐 · 65
다만 시절인연을 따라 · 85
방심은 금물 · 105
재천(在天) · 131
다래끼 소동 · 159
어떤 24시간 · 177
길을 묻다 · 201
해설 | ‘흔들리는 몸’의 수사학과 남루한 생에의 위로 · 윤애경 224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노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편다. 노인의 양손 안에는 땀으로 흥건한 손수건이 들어 있다. 땀에 젖은 손바닥을 매번 닦아주다 내가 끼워둔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인은 주먹을 늘 꽉 쥐고 있다. 마치 갓난아기가 주먹을 쥐고 있는 것처럼.
엊저녁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전하더니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배선실 창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나는 어쩔까 잠깐 망설이다 기어이 배선실 창문 아래로 목을 밀어넣어 밑의 장례식장을 바라본다. 내가 있는 곳은 3층인데 그렇게 내려다보아야 장례식장 입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인이 곧 있을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고 있다.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이제 나는 그 어떤 삶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또 그 어떤 죽음도 두렵지 않다. 진작부터 딸애를 훈련시켜야 했었다. 감정은 무시할 것이 아니라 조절해야 하는 것임을. 현실이 못 견디게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지나간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시켜야 했었다. 누구나 자기 몫의 어둠을 안고 살고 있음을 몸소 보여주어야 했다. 그랬다면 딸애는 어쩌면, 그 사건을 극복해냈을지도 모른다.
영성치유자의 가르침대로 나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매일 수행했고, 지금도 수행 중이다. 그 가르침은 내 영혼을 꿰뚫어 내게 어떤 것을 조용히 일깨웠다. 일종의 ‘멈춤’과 ‘내려놓음’ 같은 것. 나는 하루도 딸애를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저절로 눈시울이 젖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고통에 붙잡혀서 살지는 않는다. 절망이나 후회, 두려움도 내려놓았다. 그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이 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때가 되면 옮겨가게 마련이다. 우주의 어딘가로. 그들이 비가 되었거나, 흙이 되었거나, 바람이 되었거나… 다, 괜찮다.
그들은 단지 조금 먼저 여행을 떠난 것이다. 삶은 조금 먼저, 조금 늦게, 그 차이일 뿐이다. 누구나 불확실한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매 순간 줄어들고 있다. 이제 내게 매일의 삶이란,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다가올 죽음이란, 또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질, 첫날이다.
운구차가 막 출발하고 있다. 빗줄기가 시원스럽게 실로폰 가락처럼 대지를 두드린다. 아직 살아 있는 자의 눈물이 요란스럽게 사방에 흩뿌려진다. 나는 마음의 손을 가만히 흔든다. … 수고, 했노라고.
그 순간 또 딸애가 생각난다. 나는 가만히 읊조린다. ‘딸, 잘 지내고 있지? 우리 이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꼭!’
― 『삶이란, 우주의 룰렛』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