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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5120689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2-11-25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 새롭고 아름다운 여행 이야기 13편 4
나의 산티아고 39페이지 · 11
범고래 · 21
좁은 문 앞에서 · 47
냉정과 열정 사이 · 61
바다가 있는 커피거리 · 75
강릉커피 르완다 · 93
당신의 놀라운 아이 · 109
유리병 속 편지 · 125
사쿤탈라 대리석상의 비밀 · 145
검은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 171
절대 고독의 마테오라 · 181
딸! 딸! 딸! · 191
카리브해 연가 · 225
해설 | 삶의 해법을 찾는 여정 · 김나정 239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파랑길은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로 보인다.
우리나라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750㎞ 장거리 여행길이다. 내가 사는 송정 해파랑길은 39구간에 해당된다. 그리고 동부전선 최전방이다. 이곳에서는 과거 무장간첩을 태운 잠수함을 구경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침투사건이 있었던 현장이기도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국방의 의무에 충실한 군인들의 순찰이 이어졌다. 그렇게 70년 세월을 이겨온 동해 최전선 철조망이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없어졌다. 철조망이 해파랑길 39페이지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엄청난 역사적 충격이다. 또한 끝없이 열린 바닷길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신 해변을 끝없이 걷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내 남편을 향한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고 낡아지고 있다.
이제 나의 산티아고 39페이지에서는 하얀 조가비를 배낭에 걸고 순례자임을 확인해줄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에 간이 접의자를 갖다놓고 바닷가 햇볕을 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삭막함이 소리도 없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노년에 둘이서 바닷가 낭만을 즐기는 짝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나의 옆자리만 빈자리일 뿐이다.
― 「나의 산티아고 39페이지」 중에서
“그것도 아셔요, 하머니? 생일날 밤에는 가족과 함께 마당에 나가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우리 집 내력이라는 사실도요.”
“멋지다. 이 집의 내력이라. 이 할미가 그 옛날 살았던 세상에서도 별들이 밤하늘에 사력을 다해 빛나고 있었어. 얼마나 눈이 부셨는지 몰라. 각각의 별들도 우리들처럼 사연이 있는 것 같았어. 그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했었거든. 저 별은 엄마별, 아빠별, 친구별! 이름을 지어주다보면 외롭지 않았어, 가족 같았거든.”
“엄마, 지금 생각해보면 밤하늘에 빛나던 별들을 바라보는 것은 미지의 나를 바라보는 행위예술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싶네요. 비로소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린 날 가족이라는 이름의 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었거든요.”
“그러고보니, 이 엄마는 너희들에게 많이 부족했었어.”
“무슨 말, 엄마! 당치 않아요. 엄마에게 있는 좋은 DNA가 몽땅 내게 왔어요. 그것의 알 수 없는 힘까지도…. 지금의 제 딸에게 닿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꿈보다 해몽이라. 딸! 딸! 딸! 삼대가 함께 고민하고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 특별히 의미가 있겠다 싶다. 요즘은 먼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가까운 친구에게, 오래되고 낡아 너덜해진 친구에게도 카드 대신에 해마다 카톡에다 안부 같은 인사를 보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
“엄마는? 그렇게 섭섭한 말씀을요. 엄마를 제 곁에 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다니까요.”
“저도요, 하머니!”
― 「딸! 딸! 딸!」 중에서
사건마다 기다림의 미학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면 깊숙한 동굴에 슬픔 모두를 꼭꼭 묻어두었다. 영원히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자물통으로 굳게 채워버렸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장례식을 준비했다. 그처럼 마음에서 떠난 수정과도 마지막 끈을 푸는 작업을 여유롭게 시도했어야만 했었다.
그때는 몰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철은 그 옛날 순수 청년으로 돌아갔다.
치유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만큼 자신의 오래된 상처와 직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수정의 마음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미안해했다.
― 「카브리해 연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