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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419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2-04-29
책 소개
목차
1부 고양이의 식사는 얼마나 위대한 고행이냐
반가사유상 · 13
하기야 동백꽃도 · 14
삶은 종잇조각 · 16
멀고 먼 중화반점 · 18
사이 · 20
그까짓 · 21
양수리행 · 22
화천 가는 길 · 24
폭포 · 27
꽃의 명함 · 28
꽃들은 · 29
고양이의 봄날 · 30
봄날을 보내는 방법 · 32
봄꽃 · 33
폐문 정진 · 34
달빛 · 36
제부도 · 38
운악산 현등사 · 40
2부 다시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눈 한 번 깜빡 · 45
부리나케 · 46
월식 · 47
오래된 아이 · 48
시 공부 시간 · 50
양말 · 54
버려진 가구 · 55
노인의 열쇠 세 개 · 56
오후 4시 · 57
허물어진 시 · 58
그림자를 버리다 · 60
시집 왔다 · 62
아득한 · 64
빌어먹을 · 65
땅거울 · 68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 69
하하하, 아버지 · 72
미사일 · 74
열대야 · 76
3부 내장을 드러내놓는 울음은 손가락 끝까지 시리다
피는 꽃 · 79
침묵의 경전 · 80
문신 · 81
낮과 밤의 깊이 · 82
동구릉 · 84
벽 · 86
장마 · 87
중생대 쥐라기 허니문 · 88
얻어터진 날 · 89
내가 아직 못 쓴 시 · 90
흔들리는 흙 · 92
송광사에는 풍경이 없다 · 94
춤을 추고 있었구나 · 96
기린의 골목 · 98
고드름 · 100
9월 · 102
일상의 방향 · 104
지렁이 · 106
끈적끈적하게, 빌어먹을 · 107
4부 향기 나는 집이 공중에 떠 있다
염색장 · 113
향기 나는 집 · 114
계엄령 내린 날 · 116
오래된 빨래 · 118
십자가와 거미줄 · 120
종점 · 122
돌아가는 길 · 125
단풍 · 126
길 · 128
의도하지 않읔 오류 · 130
일출의 그늘 · 132
꽃산적 · 134
어쩌자고 · 135
발문 “하하하 성수야! 우리 막걸리 한잔하자” / 김정수 · 136
저자소개
책속에서
눈 한 번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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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당신이 살아온 날을 소설로 쓰면 몇십 권은 될 거라면서도 눈 한 번 깜빡하니까 머리가 하얗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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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 않는 역설을 자주 말씀하셨다,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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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엄마 뱃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도 황홀한 인연인데 엄마가 한평생 한 번 깜빡인 눈은 얼마나 이 생이 아름다울까, 꽃이 나부낀다는 것은 꽃이 진다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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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한 생이 지나고 또 다른 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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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쓴 이번 생 이야기 읽어보려고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서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는데
왜 계절은 저만큼 먼저 꽃을 내던지는지 다시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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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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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진을 뒤지다 어린 딸이 보여서 이게 너다, 가르쳐주려고 딸 방에 들어갔는데 딸이 화장하고 있었다 엷붉은 볼 초승달 손톱 노랗게 물든 머리 검은 눈썹
빨간 입술
내 허리쯤에서 찰랑이는 딸은 어디 갔을까 거울의 귀에 입을 대고 있는 딸에게 물었다 딸은 몇 해 전 거울 속에서 아이를 본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도 그 아이가 궁금하다며 긴 머리를 다시 쓸어내렸다 거울 속을 보니 옷장 뒤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가 보였다 아직도 아이의 곱슬 파마머리가 내 허리춤에서 춤을 춘다
그 어린 딸을 거실로 데리고 나와 사진을 같이 봤다
이게 너야, 하고 말해주니까 아이가 깔깔 웃는다 손뼉 치며 웃는다
사진을 다 보고 아이를 거울과 이야기하는 딸에게 데려다주었다
딸이 예쁘게 화장했다
화장대 앞에 있는 딸이 이리 와, 하니까 아이가 거울 속으로 달려가 나를 보고
웃는다
어디 갔을까 보름 전전전날 밤의 달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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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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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처럼 우는 새가 있다
섣달그믐 늦은 밤인데
왜 한 남자를 동시에 늘어진 젖가슴에 담았는지
두 여자가 청량리에서 양수리 가는 버스
양쪽 자리에 앉아 싸움을 한다
남자는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처럼 들척지근한 술 냄새만 풍기고
여자들은 “이년아!” “이년아!” 입에 풀칠한 욕만 뱉어낸다
버스는 그믐달이 낸 길을 소리도 없이 가고
버스에 타고 있는 여고생들은 청춘이 즐거워 낄낄거리며 웃는다
밤은 언제부터 어두워졌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두 여자 눈에 한 남자가 밟혀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질일까
그믐은 얼마큼 깊어야 어둡다 말할까
팔당댐 지날 즈음 버스 운전사가
싸울 거면 내려서 싸우라고 깜깜한 밤 한가운데 차를 세운다
남자는 꾹 다문 섣달 그놈의 달만 쳐다보고
남자도 잃고 머리도 다 뜯긴 여자는
갈퀴 같은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긴다
“염병헐, 이제 안 싸울라니, 후딱 갑시다.”
섣달그믐 늦은 밤
바짝 마른 나뭇잎처럼 우는 여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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