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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709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4-10-1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푸른 빛으로 오는 당신
그대 생각 · 13
당신의 거리 · 14
호로고루 · 16
부치지 못한 평강공주의 편지 · 18
주왕산 용추폭포 · 20
벚꽃 지는 오후 · 21
다시 봄날에 · 22
혁명은 바다처럼 · 24
나의 가난한 애인 · 26
수선화 · 28
단오(端午) · 30
종오정 연꽃 그리고 배롱나무 · 32
아산 공세리 성당 · 34
2부 다음 생에서는 나의 사람으로 오세요
칭다오 맥주 · 37
경주 양남 주상절리 · 38
그렇게 울다가 가는 세상인데 · 40
새벽별 하나 빛나던 날에 · 42
의자 · 44
외할머니의 윤장대 · 46
연꽃 피향정 · 48
옥천 한곡리 느티나무 · 50
이 모든 것이 · 52
나의 늙어가는 옛 애인에게 · 54
그림자 · 56
정선 · 58
우리들 생애의 푸른 망명정부 · 60
3부 세상에 뒤척이는 돛배 한 척
군위 화본역 · 63
수평선의 꿈 · 64
호우주의보 · 66
너와 나의 중립국 · 68
황토현의 붉은 밤 · 70
그의 권법(拳法) · 72
무인도 등대지기 · 74
백의종군길 · 76
연암 유문(遺文) · 78
느티나무와 새 한 마리 · 81
칡 · 82
바다의 독백 · 84
계단 · 86
목수의 시간 · 88
4부 영혼의 남쪽
밥은 먹고 왔느냐 · 93
모슬포 알뜨르 · 94
을숙도에서 수달이 꿈을 꾸다 · 96
순례기(巡禮記) · 98
이중섭거리 · 100
응봉 봉수대 · 102
말목장터에 눈 내리는데 · 104
출항제(出港題) · 106
이택재행(行) · 108
무성서원에서 · 110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말이나 할걸 · 112
화순 운주사 · 113
내가 너의 시가 될 수 있다면 · 114
해설 다시, 봄날을 기다리며 / 고봉준 · 116
저자소개
책속에서
[표제시]
너와 나의 중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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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를 뒤적거릴 때마다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이 외롭게 몸을 내준다
로또 복권을 집어넣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유난히 볼록했다
오늘 따라 필사적으로 그대가 그리웠고
이렇게 살 바에야 하고 가슴을 치던 날들은
책상 위에 이력서로 부풀어올랐다
아침 해도 비껴가기만 하는 반지하 동굴의 집
빨래를 너는 족족 피어올랐을 시커먼 곰팡이들이
바퀴벌레보다 더 자주 출몰하곤 했다
밤마다 안부를 물어오던 그대의 문자 메시지는
어느새 카타콤에 묻혀버렸고 그럴수록
어머니와 일주일 내내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날들이
하나둘 일수를 찍기 시작했다
안 되면 나랑 식당 일이라도 하러 같이 나가자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니
식당 앞 편의점에 앉아 깡소주를 마시고 들어온 날엔
접목할 수 없는 나무 한 그루가 집 안에서 자라났다
서른이 넘은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약 봉투에 위리안치 중이었다
근심으로 잉태된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엔
어젯밤을 이기지 못한 숙취가 거리를 부유하고
애인의 문 앞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을 그대의 입술은
먼 곳 지평선에 마루처럼 누워버렸다
침몰하는 저녁의 결말을 견디고 서서
발목에 잠기는 시간들 부대끼는 기억들
하나씩 하나씩 뒤척이는 꿈속에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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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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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리수거장 귀퉁이에 버려진 의자는
다리 한 짝이 부러진 채로 오롯이 앉아 있다
누군가 허름한 테이프로 부목을 댔지만
밤새 내리는 비에 맞춰
의자는 그릉그릉 울기 시작한다
울다가 지쳐 빗소리에 제 통증을 맡기고는
반들해진 모서리로 딱딱한 속살을 내밀고 있다
자식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고자
천 년을 하루처럼 앉아 있던 버팀목의 시간
부풀려진 튼살에 생을 수습 당한 맨발로
지상의 모든 아침이 소리 없이 불려나오고
기약할 수 없는 날들로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가늘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애달픔은 어디에서도 견딜 수 없어
내 어머니의 두 다리를 말없이 보는 날이면
뒤돌아가는 바람이 제 어둠에 지쳐갈 때에도
하루의 생을 거칠게 밀고 올라갔던 기억들만 남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다리는 가늘어지고
부목을 갖다댄 곳에서는 낡아가는 소리가
노을빛 속으로 가득 울려 퍼지는데
어느 아들의 슬픈 노래였을까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하시며
쌈짓돈을 내어주시던 어머니의 가느다란 다리
봄이 오면 다시금 피어오를 저 꽃잎들 속에
골짜기마다 수많은 의자들이 모여
절뚝이며 절뚝이며 남은 생의 봄날을
하염없이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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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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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들이 행여 찬란하게 소멸한다 해도
우리가 나누었던 깊은 밤 술잔 속에는
다하지 못한 봄의 얼굴이 너그럽게 담겨 있겠죠
그대는 어떻게 이날들을 견디고 계신지요
세상 그 어딘가의 끝에 가서
생애의 절벽을 마주보고 흐느낄 때도
비어 있는 그대의 가슴 속으로 안착하는 별들은
사방에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겠지요
우리의 사랑도 진한 꽃내음과 함께
여기에 왔음을 또 말하려 해도
계절의 가슴은 늘 꽃들로 하루하루 새겨지고 있잖아요
세상이 호명한 생의 밀서들은 언제나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어도
복사꽃 잎들 성호를 그으며 떨어져 내려도
땅 위에 직립하는 햇살들은 저마다
경외감 속에 하루를 저물어갈 겁니다
변해가는 것들은 모두
봄날의 주름살들로 일생을 마무리한다 해도
아등바등 살지 않고 이 모두를 받아들인 채
밤을 새워 시간을 밀고 가고 있었음을
갈기를 휘날리며 저 강둑을 넘어가고 있었음을
악몽을 꾼 밤들이 아무리 깊고 서럽다 해도
우리는 끝내 그렇게 바라보며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린 채
마지막 봄날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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