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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846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5-10-03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물의 날들
수선화 · 13
무게 · 14
홍시 하나 · 15
조신몽 · 16
서해에서 · 18
민들레꽃 · 20
미생지신(未生之信) 1 · 21
미생지신(未生之信) 2 · 22
겨울 엽서 · 23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 24
납작하다는 말 · 26
해장국을 먹다보면 · 27
저녁 바다의 기억 · 28
터미널 · 30
부고(訃告) · 32
2부 상처 위에 타는 불
상처의 힘 · 35
어긋나버리다 · 36
주소 없는 바람 · 37
길이 된 몸 · 38
오래된 독서 · 39
칼 · 40
변산 노을 · 41
넝쿨 · 42
짧은 여행의 기록 · 44
바닥은 환하다 · 46
상실에 대하여 · 48
조율사 · 50
취중진담 · 52
자목련 · 53
목숨의 진화론 · 54
3부 너로 하여 사랑에 눈을 뜨고
저녁강 · 57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 58
수채화법 · 59
가을 삽화 한 장 · 60
마음에 심는 불씨 · 61
광장시장 · 62
어떤 경주 · 64
어머니의 건축술 · 65
유구한 전통 · 66
메뉴판에 걸린 눈동자 · 68
한겨울의 고해성사 · 69
눈 내리는 망자의 장례식 · 70
성자 이야기 · 72
흐르는 계단 · 73
주공 임대아파트에 피는 봄꽃 · 74
4부 길 위에서 깨닫는 것
헤이리 느티나무 · 77
길 위의 단상 · 78
빈 들 · 79
그 나무 · 80
후포 · 82
들 가운데서 · 84
땅끝 1 · 85
땅끝 2 · 86
다산 생가에서 · 87
정선 기행 1 · 88
정선 기행 2 · 89
겨울숲 한가운데서 · 90
항아리 · 92
원대리 · 94
연 · 95
해설 자아와 세계를 지키려는 첫 ‘시’도 / 김정수 · 97
저자소개
책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어느 해 겨울 이야기
--
그날 마음도 허기진 나는, 김 서린 콩나물국밥을 몸 안으로 퍼담고 있었어 밖은 추웠고 낮은 하늘 가득 성긴 눈발이 굵어지는 무렵이었지 한두 숟갈 정도의 시간이었을까 출입문이 열리더니, 마치 기묘한 동화의 문이 열리듯, 다리를 저는 남자와 아주 작디 작은 여자 하나가 다정히 손을 잡고 들어섰지 그 작은 여자는 구석 자리에 앉았지만 차려진 국밥을 먹기엔 상이 너무 높았어 어쩌나, 다들 그 연인을 쳐다보는데, 남자가 일어나 입고 있던 옷을 성큼, 벗어 접어 여자를 안아 그 위에 앉히는 거야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 아주 작은 그녀가 상 위로 불쑥 몸이 돋아나더니 그 남자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기 시작했어 순간, 포개어진 남자의 옷이 새털처럼 가벼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기 시작했지 그를 따라 재크의 콩나무처럼 자꾸자꾸 자라기 시작하던 의자도 급기야 환한 구름 위까지 솟구치며 올랐어
-
사랑을 잃고 떠돌던 그해 겨울
뿌연 창마다 하얀 눈 내리고
길 지울 듯 가득 쌓이고
-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랑을 보았던 거야
--
상실에 대하여
--
어제
바람 몹시 불었고
강가의 꽃들 잎새를 버렸다
-
오늘
한 여자를 떠나보낸 사내가
가난한 골목길 외진 구석
술 취한 눈물 뽑아놓고 사라진다
-
직장 잃은 가장 하나
한적한 공원 벤치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떠난 후
초겨울 저녁 햇살이 대신 앉는다
-
세상에 변함없이 영원한 것은 없구나
-
내일
강가를 거닐다가
알몸으로 겨울 나는 나무를 보았다
-
골목길 돌아오는 이슥한 밤
하늘의 별빛 하나가
사내의 눈물 속에서 빛나고 있다
-
우연히 택시를 탔다가
운전대를 잡은 직장 잃은 가장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
세상에 완벽한 바닥이란 없구나
바닥은 환하다
--
봄햇살 아려오는 환한 대낮 벤치에 누워
솜사탕처럼 흘러가는 구름 바라보다
저 가볍고 환한 구름들 어디에서 왔을까 하다가
구름의 고향은 깊디깊은 땅 속 수천 리
뜨거운 내핵이 흐르는 어둠이 아닐까 생각했지
-
어린 시절 저수지에 빠진 일이 있었어 허우적댈수록
흉몽에 가위눌리듯 물 아래 추락하던 몸뚱어리는
기대 없이 바닥을 밝고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었지
-
지나고 보니 많은 날들을 버둥거리며 허우적댔어
살아가는 동안 발을 잡아끄는 저수지는 흔하게 있지
바닥을 친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험한 일 근데 말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더 깊이 가라앉는 건 다르지 않아
-
삶의 바닥을 친다는 건 목숨을 다시 세우는 일
칠흑 같은 밤하늘 창공에 빛나는 별들의 고향도
수억 광년 시간을 건너가 닿는 폐허(廢墟)였겠지
어쩌면 바닥이란 환하디환한 빛들의 자궁일지도 모르겠어
-
계절마다 들판에 지천으로 흐드러지는 꽃들도
여린 발목 캄캄한 어둠 속에 묻고서 피어나는 것처럼
하루하루도 마음의 바닥을 치며 일어나 나아가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