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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65345129
· 쪽수 : 584쪽
· 출판일 : 2022-04-2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 15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곳은 지하 3층에 유일하게 있는 방이지만 말 그대로 창고로 사용 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나마도 자신이 아니면 오는 사람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면서 왜 매일, 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으라고 한단 말인가.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그래도 이 정도면 어려운 일도 아니니 다행이지. 재경이가 하는 일은 더 빡센 모양이니까.”
머리를 벅벅 긁던 홍철은 일이 바빠 통 얼굴 보기가 힘든 동기이자 친구인 녀석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술이라도 한잔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홍철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깜빡. 깜빡.
“아 씨, 아직도 안 바꿨나 보네.”
홍철은 최근 들어 형광등이 깜박거리는 일이 잦아져서 짜증이 났다. 귀신 같은 건 믿지도 않고 무서운 영화도 잘 보는 편이었지만, 이곳만 내려오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긴장되곤 했기 때문이다.
“윽.”
다급히 코를 틀어막은 홍철이 거의 뛰다시피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서야, 홍철은 창고 문에 나 있는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창고치고는 물건도 적은 편인데 때때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유해 가스가 흘러나오는 게 분명해. 아무래도 그만두든가 팀장님에게 항의하든가 해야겠어.”
병원에서 유해 가스가 나올 일이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별다른 장비도 주지 않고 위험한 곳에 보내는 건 상도덕이 없는 것이었다.
홍철은 이번에도 창고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반드시 일을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다.
불이 꺼진 창고에는 다시금 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사실 형광등이 깜박거릴 때도 그 모습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가 했으나, 아마도 홍철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순식간이어서 유심히 보지 않는 한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 1
“이번에도 빨리 끝날 것 같은데. 쳇, 위에서 알면 또 난리 치겠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봐왔던 실험 결과에 따르면 ‘그것’에 의해 잠식되는 시간은 천차만별이었다. 가장 길게 버틴 게 2시간이었고 완벽하게 잠식된 경우는 없었다.
항상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지금처럼.
“29분 42초. 실패.”
“뭐?”
“명색이 외과 의사로 활동했으니 피 정도는 무섭지 않겠지?”
의미심장하게 말을 마친 여자는 민재와 똑같이 어벙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2명의 요원에게도 말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눈을 감는 것을 추천할게. 구토 냄새가 지독하거든.”
안타깝게도 의미심장한 말을 바로 해석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로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침대가 거세게 진동할 정도로 몸을 떨던 강철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눈물을 시작으로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불룩 솟아올랐던 부분에서부터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새하얗던 침대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고, 침대 아래에는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를 이루고 있던 장기와 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붉은 액체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성인 남성이 완전히 녹아 없어진 것이다.
‘미친. 이건 미친 짓이야! 맙소사! 내 병원에서! 젠장!’ 오기로 버티고 있던 민재는 결국 화면에서 고개를 돌렸다. 휘청거리며 간신히 벽을 짚은 그는 핏기가 빠져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혹시 모르니까 소등 이후에 처리하도록 해. 필요하면 보안 팀을 불러도 좋아. 환기는 꼭 시키고, 절대 냄새가 남지 않도록 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원 중 1명이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의사인 자신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는데 저들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이 일은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기밀이었다.
“알겠습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이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1명이 민재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을 수행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민재는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그곳을 벗어났다. 짧은 복도를 지나 원장실과 이어져 있는 문을 열려던 민재는 들려 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뭐지? 이것들이 또 뭘 꾸미고 있는 거야?’ 호기심에 민재는 살짝 문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네, 아직 큰 변화는 없습니다.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2
발작을 일으킨 거라고 생각한 몇몇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대화를 할 것처럼 벌어지던 여자의 입술이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틀린 것은 그때였다. 흑백 세계에 살고 있는 그것은 이곳으로 넘어오기 위한 하나의 통로로써 여자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영리하게도 그녀의 피를 줄기에 묻혀,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도 뚜렷하게 보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여성의 입을 통해 튀어나온 검은 줄기들이 마음껏 사람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으아악!”
“커헉!”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검은 줄기에 관통당한 사람들은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좁은 공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하는 그 속에서 지영과 숙영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사람들에게 휩쓸려 내려간 것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우리도 가자! 얼른!”
“그럼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해?”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와 박하를 괴롭혔다. 눈이 보이지 않는 동안 청각이 발달한 박하에겐 너무 큰 고통이었다. 박하가 있는 곳까지 피가 튀어 볼에 붉은 자국이 만들어졌다.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연주를 돌아보며 박하가 물었다.
“엄마도 저들을 구해주고 싶어. 하지만 우린 할 수 없어, 박하야.”
“하지만…….”
떼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박하는 연주가 이끄는 대로 다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오랫동안 달린 적이 없는 박하는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서, 박하는 휘청거리는 다리에 안간힘을 주고서 위로, 위로 올라갔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