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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66830334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21-05-12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숨어있기 좋은 방
에필로그
작품 해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또다시 아침이다. 이제 일어나야 하고 무엇인가,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엎어져 있고 눈은 떨어지지가 않는다. 나는 눈을 뜨고 몸을 움직여 보려고 애를 쓴다. 몸이 왜 이렇담. 투덜거리면서도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바람 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좀 더 귀를 기울이니 이 소리는 빗소리가 분명하다. 뚜두둑 뚜두둑. 이상하게 빗줄기가 내 등 위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뚜우, 기적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철컥철컥, 기차의 바퀴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홀짝홀짝 나폴레옹을 마셨다. 이 술은 뭔가, 내 인생에 불가능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금방 다 마셔버렸고 나는 눈에 보이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새로운 나폴레옹을 샀다. 그리고 또다시 걸었고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수배된 자들이 몸을 숨기기 위해 캄캄한 밤에 남몰래 드나들 것 같은 여관이었다. 몇 십 년은 된 것 같은 간판이 삐뚤게 걸려있고, 녹이 슬어 얼룩덜룩한 대문 사이로 보이는 흙 마당에는 쓰레기 더미들이 지저분하게 쌓여있었다. 그 안쪽 구석에는 버려진 듯이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내가 이 여관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그 오동나무 때문이었다. 밤바람에 널따란 잎사귀를 한가롭게 흔들고 있는 키가 큰 나무였다. 나는 나무가 무엇인가 내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겨둬 보라구.’ 분명 그런 소리였다. 나는 녹슨 대문을 열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2층에 방을 얻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밤새워 술을 마셔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