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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정의 [二]

논어정의 [二]

(권3·권4)

유보남 (지은이), 함현찬 (역주)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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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정의 [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논어정의 [二] (권3·권4)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공자/논어
· ISBN : 9791166842283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3-08-21

책 소개

『논어』가 담고 있는 광범위한 영역과 주제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책이다. 또한 현대적인 문맥에서 접근 가능한 표준적인 번역 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표점과 주해를 더하여 한국 유학에 있어 『논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3
팔일 제1
논어정의 권4
팔일 제2
색 인

저자소개

유보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91년 강소성 보응현에서 아버지 이순(履恂)과 어머니 교씨(喬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였다. 종부 태공(台拱)의 학문이 깊고 정밀하였으므로 그에게 전수받기를 청하여 학행으로 향리에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제생(諸生)이 되었을 때 의징(儀徵)의 유문기(劉文淇)와 명성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양주이유(揚州二劉)”라고 칭송하였다. 도광 20년(1840) 진사가 되어 직례성 문안현의 지현(知縣)을 제수받았다. 문안현은 지형이 웅덩이에 비해 낮았는데도 둑이나 제방이 닦이지 않아 장마가 내리거나 가을 홍수가 나면 번번이 백성들의 해가 되곤 하였다. 이에 유보남은 제방을 두루 걸어 다니면서 병폐와 고통을 묻고 옛 서적들을 검토하여 일군의 주둔병과 백성이 함께 정비하도록 독촉하였다. 16년 동안 관직에 있었는데, 항상 의관이 소박하여 마치 제생 때와 같았다. 송사를 처리함에 삼갔고, 문안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쌓인 현안 1,400여 건을 자세하게 살펴 결론을 내렸으며, 새벽닭이 처음 울 때면 당청에 앉아, 원고와 피고가 모두 법정에 나오고 증거가 구비되면 때에 맞춰 상세히 국문하였다. 큰 사건이건 작은 사건이건 할 것 없이 균등하게 자기의 뜻대로 안건을 판결했고, 패도한 자는 법의 판례에 비추어 죄를 다스렸다. 무릇 소송에 연루된 친척이나 오랜 친족은 내외척 간의 친목(睦?)으로 깨우쳐, 대체로 화해하고 풀도록 하였다. 송사와 옥사가 한가해지고 나면 아전들은 자리를 떠나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였으니, 멀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화합하여 순량(循良)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논어정의』는 그가 38세에 뜻을 두고 착수하여 평생을 바친 저작으로, 청대 『논어』 연구의 결정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4권까지 지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아들 공면에게 이를 이을 것을 맡긴 후 함풍 5년(1855)에 죽으니, 향년 65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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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87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2000년 중국 송대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및 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아울러 성균관 한림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재: 송대 기철학의 완성자』, 『주돈이: 성리학의 비조』, 『(교수용 지도서) 사자소학』, 『(교수용 지도서) 추구·계몽편』, 『(교수용 지도서) 격몽요결』 등이 있고, 함께 번역한 책으로는 『논어징』 전 3권, 『성리논변』, 『증보 동유학안』 전 6권, 『주자대전』 전 13권, 『주자대전차의집보』 전 4권, 『역주 예기집설대전 2』, 『왕부지 중용을 논하다』 등이 있다. 이 외에 연구논문으로는 「《논어징》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의 성인관」, 「《논어징》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의 도 인식」, 「성리학의 태동과 정체성에 대한 일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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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살펴보니, “말하면서 실천함”과 “행하면서 즐김”, 이것이 인자(仁者)가 행하는 바이다. 맹자(孟子)는 예와 악을 논하면서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데서 근본을 추론해서 인의(仁義)의 실제로 삼았으니, 인은 사덕(四德: 仁義禮智)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예와 악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전한서』 「적방진전(翟方進傳)」에는 이 문장을 인용하여 설명하면서 “인하지 않은 사람은 베풀어 쓸 곳이 없으니, 인하지 않은데도 재주가 많은 것이 나라의 근심이라는 말이다.”라고 했다. 베풀어 쓸 곳이 없으면 예와 악을 행할 수 없으니, 비록 재주가 많더라도 다만 불선(不善)이 될 따름이다. 공자 당시에는 예와 악이 대부로부터 나와 참절(僭竊)함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고[相仍], 그릇됨이 옳음을 이기는 데 익숙해져 예와 악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53쪽

살펴보니, 김방의 설명이 매우 자세하다. 『시경』 「국풍(國風)·제풍(齊風)·의차(?嗟)」에 “종일토록 과녁[侯]에 활을 쏘아도 정곡[正]을 벗어나지 않네.”라고 했으니, 정(正)과 후(侯)가 똑같이 하나의 과녁임이 분명하다. 『시경』 「소아(小雅)·보전지십(甫田之什)·빈지초연(貧之初筵)」의 「소」 에 『주례』의 정중(鄭衆)과 마융의 「주」를 인용했는데, 모두 정(正)이 곡(鵠) 안에 있다고 했다. 정이 곡 안에 있기 때문에 『시경』 「국풍·제풍·의차」에서 활을 쏘아도 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과녁을 맞히는 기술을 자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방이 인용한 가경백의 정이 곡 밖에 있다는 말은 잘못이다. 천자와 제후는 향사례가 없으니, 「향사례·기」에서 말한 웅후(熊侯)니 미후(?侯)니 운운한 것은 모두 연례(燕禮)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김방이 인용해서 연사임을 증명한 것이다. -178-179쪽

살펴보니, 주나라시대 사람들의 병(屛)의 제도에는, 마땅히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한 소장(蕭牆)이라고도 한다. 그 당시 종묘의 병풍은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예기』 「명당위」에서는 그것을 소병(疏屛)이라고 했다. 소(疏)는 새긴다[刻]는 뜻이다. 지금 인가의 조벽(照壁)이, 바로 그 모양을 본뜬 것이다. 『순자(荀子)』 「대략편(大略篇)」에 “천자는 외병(外屛)을 세우고, 제후는 내병(內屛)을 세우는 것이 예이다. 노문(路門)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밖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고, 노문 안에 내병을 세우는 것은 안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회남자』 「주술훈(主術訓)」에는 “천자가 노문 밖에 외병을 세우는 것은 스스로를 가리기 위함이다.”라고 했으니, 병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주」에서 “임금[人君]”이라고 한 것은 천자와 제후를 겸해서 한 말이다. -285-286쪽

살펴보니, 『춘추번로』 「초장왕(楚莊王)」에 “문왕의 시대는 백성들이 그가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무」음악이라고 한 것이다. 무(武)란 정벌한다[伐]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순임금이 「소」를 만들고 우왕이 「하(夏)」를 만들었으며, 탕(湯)왕이 「호(頀)」를 만들고 문왕이 「무」를 만든 것이다. 네 가지 음악이 이름을 달리하는 것은 각각 그 백성들이 비로소 자기에게서 즐거워하는 것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주(紂)왕이 무도하고 제후들이 크게 어지러워지자 백성들은 문왕이 노여워함을 즐거워하면서 그를 읊조리며 노래한 것이다. 주나라 사람의 덕이 이미 천하를 윤택하게 해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그것을 「대무」라 하니, 백성들이 처음으로 좋아한 것이 무라고 그렇게들 얘기한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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