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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67030719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3-03-07
책 소개
목차
턴아웃
『턴아웃』 창작 노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백조의 호수> 3막이다. 제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나서 무대로 뛰어들어갔다. 흑조 오딜이 왕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이다.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라고 서 단장이 수십 번 가까이 다그쳤던 장면이었다. 토슈즈를 신은 발끝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처럼 걸리적거린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푸에테 동작을 시작했다.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은 채 다른 쪽 다리를 놀리며 서른두 번의 회전을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발끝이 아팠다.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엄지발가락 한 마디를 관통하더니 두 번째 마디를 푹 쑤셨다. 아프다……. 아프다……. 너무 아파 쓰러질 것 같다.
제나는 안간힘을 쓰며 객석을 내다보았다. 이천여 명의 객석이 빈틈없이 꽉 찼다. 어둠 속에서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제나는 발가락이 아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무대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객석 가운데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딸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를 눈치챈 걸까. 엄마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고양이같이 도도한 눈으로 제나를 응시했다. 이제 무대를 뛰쳐나갈 수도 버틸 수도 없다. 제나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엄마는 눈물을 감지한 게 틀림없었다. 입술을 앙다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제나야, 계속 춤을 춰야 해! 엄마처럼 뛰쳐나오면 안 돼! 죽더라도 무대 위에서 죽어!
어린 시절에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대상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발레가 좋아 열심히 연습했다. 발레스쿨 1년 차 때만 해도 소율은 제나와 친하게 지냈다. 함께 발레 공연을 보고 난 뒤 감상을 이야기할 때면 열에 들떠 두 눈을 반짝이던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나와 벌어지는 격차를 견딜 수 없었다. 어딜 가든 제나 이야기뿐이었다. 소율은 정말로 풀이 죽었다. 죽도록 연습하는데, 왜 자기가 제나한테 밀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습량이 소율 자신보다 많은 학생은 없었다. 소율은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했으니까. 소율은 타고난 자질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았다. 처음으로 연습과 노력의 한계를 맛보았다. 모두 제나 때문이었다.
‘제나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무서웠다. 그러나 발레리나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이란 말은 가식이었다. 우열이 드러나는데 어떻게 선의가 있을 수 있겠어! 그런 식의 경쟁은 적어도 소율에게는 없었다. 최고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를 장악하는 것, 그것만이 소율이 발레를 하는 목적이었다.
“비비안, 요즘 제나와 무슨 이야기를 했니?”
비비안의 눈에 파란 불빛이 켜졌다. 불빛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곧 안정적으로 파란빛을 내비쳤다.
“제나 님은 요즘 종종 별에 대해 물었어요.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지구와 얼마만큼 먼 거리에 떠 있는지 궁금해했어요.”
“별이라고?”
“네, 요즘 천문학에 부쩍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뭐, 천문학?”
“네, 천문학은 지구 대기권 너머 우주 전체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또 우주 안에 있는 다른 천체를…….”
“그만!”
수연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천문학이라면 전 남편 태영의 연구 분야였다. 태영은 제주도에 있는 천문학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교수직을 버리더니 아예 제주도로 내려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연구했다. 수연은 언제나 태영이 못마땅했다. 별을 연구하는 그가 몽상가처럼 느껴졌다. 그뿐이면 다행이었으나 문제는 어릴 적부터 제나가 남편의 일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잠잠하더니 왜 하필 요즘 제나가 천문학에 또다시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