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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시론
· ISBN : 9791167240798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22-03-2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04
제1부 시조는 무엇을 원하는가
현대시조의 리듬 10
시조는 무엇을 원하는가 :시조의 미래, 미래의 시조 27
제2부 당신을 닮아가는 시
김상옥의 시조 미학과 현대시조의 리듬 — 김상옥론 44
서정과 선언 사이의 미학적 힘을 위하여 — 박재두론 64
서정의 복원과 선언의 글쓰기 — 김복근론 80
주름 잡힌 시와 도래할 시간 — 강경주론 95
발화하는 몸, 시조의 몸 — 김보람론 108
존재 저편으로, 대답하기 위해 질문하는 시인 — 이우걸론 122
기다리는 시집 — 이정환론 130
실존하는 몸, 언어로 실현되는 감각 — 임성구론 140
세계를 넘어가는 한 줄, 리듬을 위하여 — 김민서론 152
의미가 현시하는 장소, 토포필리아의 시 — 황성진론 166
내려가는 일과 들림의 일, 사랑과 봉헌의 시 — 김선희론 181
영원히 아름다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홍준경론 196
이야기의 강바닥을 어루만지는 손길, 리듬 — 이경애론 211
비극을 노래하며, 북극성을 향하는 — 김월수론 226
초월적 아름다움을 향하는 시, (당)신을 닮아가는 시 — 선안영론 236
자연과 연대하며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 리듬— 조영희론 254
유리처럼, 고독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 김태경론 270
제3부 시의 일, 너머의 세계
음악 : 시는 어떻게 음악이 되는가 286
비극 : 비극의 탄생 302
일상 : 일상이 일상이 아닐 때 319
혁명 :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335
이미지 : 이미지는 힘, 힘의 폭발 352
미학 : 과정으로서의 아름다움 373
말 : 존재 스스로 말한다 392
상처 : 상처 입을 가능성에의 의지 415
상징 : 은유 너머의 세계 436
리듬 : 형식이 장르가 되는 일 451
장소 : 시의 공간 468
화자 : 불꽃처럼 소멸하는 자 483
저자소개
책속에서
리듬은 텍스트적 실체가 아니다. 리듬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만 언어 그 자체가 리듬은 아닌 것처럼, 리듬은 경험될 때 리듬이 된다. 여기서 리듬의 경험이라는 것은 텍스트로부터 시각적 혹은 청각적인 운동의 흐름을 감지한다는 뜻인데, 그것은 작가와 독자, 혹은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코드이자 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시조라는 정형시에서 리듬은 음운론, 통사론, 의미론 모두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의 통합체가 곧 리듬이다.
여기서 특별히 시조는 ‘정형률(음보율)’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통합체로 기능하는 것이지, 정형률만 개별적으로 존재하거나 기능하기는 어렵다. 물론 시조는 4음보를 전제로 창작되었고 4음보로 읽는 것을 강요받지만, 그것을 ‘규칙’으로만 본다면 모든 시조는 하나의 리듬만 갖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조는 각자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다면, 그 리듬은 분명 의미와 연관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의미는 역사와 사회 혹은 인간에 대한 주관적 재현, 개별 주체의 주체성이 최대한 발휘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의 리듬은 늘 새로운 세계 안에서 구성되며,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언어와 형식에 의해 구축된다. 그것을 ‘리듬 충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시조는 리듬 충동의 로고스와 파토스를 동시에 보여주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문학 장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시조는 소수의 시인들 시집에 언제까지 갇혀 있을 것인가. 시인들끼리 열심히 창작열을 돋우고 세미나도 하며 세계화를 꿈꾼다고 한들, 시조는 여전히 지면에 갇혀 있을 뿐이다. 이제 시조는 거리로 나가야 할 것이다. 시조는 ‘페이퍼 시조(Paper Sijo)’가 아니라, ‘스트릿 시조(Street Sijo)’, 퍼포먼스(performance)로서의 시조가 되어야 한다.
시조의 고유성을 해친다고 말하거나, 시조의 본질 또는 정신을 잃는다는 우려와 비판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시조 역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문학 장르다. 시대정신이 본질이다. 시대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시대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면 시조는 곧, 어느 박물관의 유물실에 전시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실험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정격을 지킬 수 없다.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변혁만이 시조의 지경(地境)을 넓힐 것이다. 그때 시조는 ‘이미’ 대중의 시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우걸 시인의 시집에 수록된 시의 리듬은, 시조의 율격 따위로 읽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 리듬은 텍스트적 실체가 아니며, 경험하는 리듬이다. 다시 말해, 시조의 리듬은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언어 그리고 형식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므로, 시인에 의해 파괴되는 낡은 감각적 분배에서 시조의 리듬은 시작된다. 기존의 담론을 해체하고, 기존의 감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문장들의 흐름(리듬)은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이다. 그 리듬이 시조이든, 소설이든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우걸 시인의 리듬은 시조로 발현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우걸 시인의 작품을 읽을 때는, 이 작품이 시조임을 전제로 읽어야할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가운데 시조의 리듬을 우리가 ‘경험’해야 한다.
“단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삶을 다하여야 하며, 단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예술을 다해야 한다”는 모리스 블랑쇼의 말처럼, “그 어떤 작품과도 닮지 않으면서 예술을 닮아야 한다”는 조셉 주베르의 말처럼 시조라는 장르를 다해서 문장 하나를 완성해가는 이우걸 시인의 리듬, 존재론적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이우걸 시인의 리듬은 이우걸 고유의 것이자 시조 고유의 것이다. 앞으로 이우걸 시인이 고군분투해야할 것은 클리셰가 아니라 시조라는 장르 자체일 것이다. 이우걸 시인이 하나의 시조다.